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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16. 2022

대파 정리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겨울 중간 즈음 트럭에서 구입한 대파는커다란 화분에 묻어만 두고 한 줄기 먹어보지도 않고 봄을 맞았다. 냉동실에 대파가 가득 들어 있어 그것부터 먹기 바빴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대파 꽃봉오리들이 올라오고 있다. 누렇게 시든 파 잎들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대파를 몽땅 뽑아 활짝 펼친 신문지 위에 올렸다. 겨울 한 절 견딘 커다란 대파 한 단의 부피가 제법이다. 대파 뿌리에 덮일 동 말 동 할 정도로 흙을 얕게 깔고 묻은 다음 두 번에 걸쳐 반 컵 정도의 물을 뿌리 쪽에만 뿌려 주었는데 대체로 잘 자란 편이다. 한 뿌리도 완전히 가 버린 것은 없다. 겉잎이 미라처럼 마르고 쪼그라드는 동안 안쪽에서는 계속해서 새 잎을 내고 있었다.


다만 물이 조금 많이 닿았던 대파는 뿌리 쪽이 약간 무르기 시작했으나 이 정도면 양호하다. 신기한 것은 물기가 거의 닿지 않았던 대파는 땅에서 뽑혔을 당시의 뿌리는 완전히 말라 있고 새 뿌리가 흙이 아닌 제 몸 그러니까 대파 몸체 쪽으로 길게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이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든 못 할 게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한다. 물이 고갈된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소변을 물 대신 마신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생명유지 수단 중 하나의 예다. 대파 또한 살아남기 위해 제 몸 안의 물기라도 흡수해야만 했을 것이다. 다른 부위도 마찬가지이지만 겨울을 나는 대파는 그만큼 뿌리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드는 또 하나의 생각, 차라리 물을 아예 주지 않았거나 한 번 정도 더 적은 양의 물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그랬더라면 물기가 많아 뿌리가 상하거나 아래 줄기가 무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대파에 대한 학대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시든 잎들을 쫙쫙 벗겨내고 뿌리 쪽 5~7cm 정도에서 잘랐다. 잘라낸 대파 뿌리 부분은 물기 적은 화분에 심었다. 심었다기보다는 올려두었다고 해야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물을 많이 주면 녹아버리는 대파의 특성상 뿌리 아래쪽을 촉촉한 상태로 유지해 주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싶다. 이런 상태에서도 살아남는다면 대파는 정말 대단한 식물이다. 


대파는 꽃이 핀 후 그대로 두면 꽃에서는 씨앗을 맺고 아래쪽에는 다음 세대인 새끼 대파를 남긴다. 꽃대를 모두 잘라낸 대파 아랫부분이 살아 다시 대파를 낳는다면 비좁은 베란다에서 대파 키워 먹기 성공이다. 내가 알기로 아무리 친환경 약으로 키운다고는 하지만 농약 덩어리인 식품 중에 대파도 포함되어 있다. 흙 위에 올려둔 이 대파 줄기가 살아나기를 바란다. 살아나지 않는다 하더라고 내 궁금증 해소에는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양이다.



위쪽 부분은 중간쯤에서 잘라 씻어 두었다. 잠시 나들이 다녀와서 대파 김치에 도전할 참이다. 


어슷 썰까?

반 갈라서 길쭉하게 썰까?

깔끔하게 통으로 썰까?


대파 김치를 생각하며 적어도 몇 시간은 즐거운 상상을 하겠다. 화분에 올려둔 대파 밑동을 생각하면 아마 일주일 이상은 대파와의 대화로 무료하지 않겠다. 이 대파들 중 살아남는 대파가 있다면 모르면 몰라도 내 자랑 단지 깨지는 소리에 내가 아는 이들 귀가  조금은 시끌시끌하기도 하겠다.


 



물기 쫙 빠진 대파를 길게 두어 번 갈라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로 썰었다. 날 따뜻해지는 주말엔 국수며 냉면 위에 얹어 먹기에는 어슷 썰기나 통으로 썰기보다 아주 가늘지 않은 상태의 길쭉한 모양이 국숫발이나 냉면발과 어울릴 것 같아서다.


풀만 죽은 대파 김치를 한 접시 덜어냈다. 날 대파 김치 맛이 괜찮다. 남편이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하고 온다니 고기 한 쪽 구워 대파 김치와 함께 먹어볼 셈이다. 



언젠가 파를 많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겸 검색을 해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아무려면 어떠냐. 파김치를 좋아해서 내 머리가 나빠졌기 망정이지 이보다 머리가 좋았더라면 지금보다 세상 살기가 훨씬 힘들 거라고 위안을 삼는다. 다만 파김치는 대파 김치든 쪽파 김치든 특히 날 파김치일수록 주말을 택해 먹어야 한다. 먹고 난 다음날 배출가스는 환경 오염 수치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자칫 이웃의 냄새 신경을 마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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