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두 줄로 늘어선 마을 한가운데 아스팔트 포장길이 생겨 있었다. 50가구 주민들이 총동원되어 갯벌 흙을 퍼다 리어카 두 대는 지나다닐 폭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갯벌은 아스팔트를 닮은 색이면서도 광채가 나지 않는 점잖은 색이다. 동네 가운데를 곧게 뻗은 갯벌 흙으로 만든 길이 내 어린 마음에도 그럴싸해 보였다.
며칠 등교하다 겨울방학을 맞았다. 썰물 때면 바다에 나가는 엄마를 따라나서곤 했다. 엄마는 크지 않은 양은그릇과 조세라는 굴 따는 도구를 들고 멀리까지 나가 굴을 땄다. 엄마가 따온 굴은 요즘 요즘 사 먹는 굴처럼 큰 게 아니어서 굴젓을 담그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맛난 맛이 났다. 며칠 익힌 굴젓에 고춧가루와 다진 파와 다진 마늘, 깨소금을 넣고 버무려 밥상에 올려놓으면 짠 줄도 모르고 꽁보리밥에 비벼먹곤 했다.
5학년이 되면서 마을은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학교 가는 길은 낮은 산을 깎아 만든 붉은 황톳길이었다. 경사가 거의 없이 깎아낸 산 벼랑에는 숭숭 뚫린 구멍이 많았다. 말 짓기 좋아하는 아이들에 따르면 그 깎아낸 산 벼랑 구멍들에는 뱀이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 특히 아이들에게 그것도 목을 향해서 확 달려든다고 했다. 아이들은 등교하는 아침이면 그 구멍 숭숭한 깎인 길을 왼쪽에 끼고 숨 가쁘게 냅다 내달리곤 했다. 달리기만큼은 결코 누구를 이겨본 적 없는 나는 심장이 조이는 듯한 두려움을 참으며 저만치 달려가는 아이들 뒤를 따라 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달리는 내내 나는 뱀이 내 목을 조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 길 아래쪽은 내 키와 맞먹을 정도로 깊이 깎아 만든 밀밭이었다. 아니 느슨한 산기슭에 밀밭이 먼저 자리 잡았고 밀밭 위쪽 산기슭을 깎아 생땅에 길을 냈다는 쪽이 맞다. 밀인지 보리인지 구분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리 이삭은 수염이 좀 짧고 바람에 약간 흩어진 듯 숱 많은 굵은 머리카락 모습인 반면 밀 이삭은 숱도 적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잘 빗겨 곱게 땋아 내린 모양이었다. 문제는 산 벼랑과 밀밭 사이로 난 길을 통해 우리가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점이었다. 학교뿐이랴. 거름 나르는 달구지와 리어카는 물론 가뭄에 콩 나듯 구경하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마을을 외부와 연결한 길이라고는 그 길이 유일했다. 그 하나뿐인 길에 늘 뱀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공포 중의 공포였다.
밀 이삭이 누렇게 팰 무렵이 되자 뱀에 대한 두려움도 차츰 줄어들었다. 그것은 자주 뱀을 대하면서 뱀도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밀 먹을 줄 아는 아이들이 밀 이삭을 두어 개씩 따서 껌처럼 질겅거리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의 대싱이던 뱀이 뒤로 물라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 마을로 드는 입구에는 길남이 아저씨가 살았다. 아저씨네 집에는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다.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는 그 우물은 늘 덮개를 덮어두곤 했다. 어른들은 바닷가에 가까운 우물인데도 간간한 맛이 전혀 없는 맛난 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 집은 물론 동네 사람들 중에는 길남이 아저씨네 우물물을 길어다 먹는 집이 많았다.
이끼가 끼어 있는 우물 뚜껑은 양쪽으로 반씩 열게 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바가지로 물을 떠 양동이에 담고 있으면 우물 속 푸른 이끼가 떨어져 나와 바가지에 들어오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이끼가 떨어져 나와 바가지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우물 속 이끼는 우물 벽에 붙어사는 식물이었고 우리는 이끼가 사는 그 우물물을 이끼와 함께 나눠 먹으며 살면 되었다. 우리들은 아이가 없는 길남이 아저씨네 집에 자주 놀러 갔다. 닭과 돼지, 오리, 개, 소 등 키워본 적 없는 가축들을 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길남이 아저씨네서 논이 펼쳐지는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공터에는 상엿집이 있었다. 상엿집은 죽은 사람을 태우고 장지까지 가는 상여를 보관한 곳이다. 일고여덟 살 무렵 한강변에서 눈 돌리지 않고도 온몸으로 느끼던 죽음이 주던 두려움을 상엿집에서 느끼곤 했다. 마른풀 색 모포 아래 드러누워 있었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군인 아저씨의 얼굴을 멋대로 상상했다.
동네 서쪽으로는 꽤 높은 산 하나가 버티고 있었다. 서녘 산머리에 해가 걸리면 동네는 금세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기 시작했다. 그 산 저편 해가 산등성이로 넘어갈 때면 산 그림자 때문에 오히려 더 환해 보이는 빛이 조금 남은 자리에 문둥이 남매가 산다는 오두막이 있었다.
남매네 오두막에서 가까운 곳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방죽이 하나 있었다. 방죽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푸른색이었다. 하늘이 내려와 사는 듯한 깔끔한 푸른색이 아니라 맑고 푸르기는 한데 화가가 아닌 나로서는 그려내기 힘든 흰색이 섞인 듯 연두색이 섞인 듯한 푸른색이었다. 어느 여름날 엄마가 이불 홑청을 빨기 위며 커다란 양은솥에 이불 홑청과 빨래방망이, 비누 등을 담아 이고 방죽으로 향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방죽으로 갔다. 엄마는 방망이질을 해 가며 이불 홑청을 빨아 삶은 후 다시 빨아 너른 풀밭에 널었다. 또 다른 이불 홑청을 같은 순서로 빨아 널어 말렸다.
엄마가 빨래를 하는 동안 나는 말거머리와 놀았다. 말거머리의 몸이 둥글게 말렸다 펴졌다 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 남매로 보이는 아이 둘이 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보았다. 그러다가 무엇을 잘못 만졌는지 왼쪽 볼에 따끔한 뭔가가 스치듯 지나간 것 같았다. 금세 퉁퉁 붓기 시작했다. 벌에 쏘인 것이다. 엄마가 이불 홑청을 대충 접어 머리에 이고 내 손을 잡아끌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내 왼쪽 볼에는 된장이 한 줌 발라졌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 한 일주일 고생했음은 물론이다. 그 남매에게 마음이 팔려 벌집을 건드리는 줄도 몰랐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