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증명

by YUJU

자기 증명을 한 번이라도 해봤던 사람은 안다.

자기 증명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나 처절하고도 비참한 행위인지.


자기 증명이 반드시 필요한 장소는 대체적으로 내가 소속되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일종의 '통과 의례'에 해당하는 자기 증명은 그 당사자에게는 그만큼 절박한 문제가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바운더리를 뚫고 진입한 나에 대한 신뢰가 1도 없는 공간에서

"니가 여기서 어떻게 하나 보자.." 하는 의심 어린 시선들 가운데에서는

나의 존재 자체도, 작은 행동도, 말도, 모든 것이 새파랗게 벼려진 칼날 위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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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자기 증명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그때는 낮이 되면 누가 초대하지도 않은 장기 자랑의 심판대 위에 스스로 올라가서

침묵해야 할 때 오버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밤이 되면 낮을 반추 하며 나 자신을 욕하고, 상처받은 동물처럼 신음소리를 내며

왜 이렇게 밖에 못했는지, 아니, 애초에 난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

능력 없는 나, 부족한 나를 강박적으로 닦달하며 스스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었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자기 증명의 시간은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티다 보니 어느새 끝이 나있었다.

나를 향한 아주 조금의 인정이라 할지라도 놓치지 않고

그런 작은 희망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

마음의 구멍 난 곳에 다시금 가져다 붙이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더 이상은 이런 애씀이 별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자기 증명은 결국 조금이라도 회복된 내 '마음'이 스스로 끝내야 하는 것이더라.

여전히 탁월한 능력도 없고, 인정받을만한 주제가 되지 못했다는 건 이전과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마음에 난 구멍이 하루하루 누덕누덕 때워지고 기워지다 보면

적어도 나를 깔아 내리고 무시하는 누군가가

내 뿌리까지 건드리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용기 정도는 생긴다.


그냥 이런 부족한 나라도 뭐 그런대로 쓸만하지 않나, 라는 약간의 뻔뻔함이 생긴 요즘.

항상 프라이팬 위의 팝콘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안달복달 하던 가벼운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주 오랜만에,

어떤 말을 하고 나서 내 말이 미칠 여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나를 발견한 순간이 있었다.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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