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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Sep 18. 2024

23. 시간이 만든 것들

[할머니의 손] Ⅳ. 흔적과 기억과 시간


 할머니가 가신 후 몇 년, 가족들은 빈자리를 그대로 남겨 놓은 채로 일상을 살아갔고 점차 그 자리가 뻥 뚫린 구멍이 아닌 기억할만한 점이 될 때까지 시간이 성실하게 흘렀다. 뻥 뚫린 공허를 이고 지고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의미 있는 어떤 이를 완전한 무(無) 속에 두고 올 수도 없으니, 우리는 점 같은 흔적을 남겨 그를 기억하고 기리는지도 모르겠다. 기념일이나 기념 장소를 만드는 일도 그 일환일 것이다.


 지난 몇 해 간 나는 운전실력이 늘었다. 겨우 동네 언저리만 돌 줄 알던 내가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의 할머니 묘원까지도 척척 갈 수 있게 됐다. 한동안은 조수석에서 같이 내비게이션을 봐 줄 동행이 필요했으나, 길이 눈에 익고 나서는 혼자서도 잘 갈 수 있게 됐다. 할머니를 보고 싶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거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도 성장의 척도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성장은 계속되는 것 같다.


 매년 정기적으로는 네 번씩 할머니의 묘원을 방문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봄을 포함하여 계절별로 한 번씩 그곳에 갔는데, 봄 무렵 즈음에 봉안묘 앞쪽에 빨갛게 피는 진달래 나무가 특히 아름다웠다. 딱 한 그루만이 거기 서 있었는데 이 나무를 찾아오면 할머니의 위치를 찾기 쉽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에 그늘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는 묘원에 가려면 양산이나 모자를 필수로 준비해야 했다. 이맘때쯤은 산자락과 하늘이 이루는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가을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눈 오는 날에 가는 묘원도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울타리와 나무마다 폭신하게 쌓인 눈이 도리어 따스하게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잠들다니 ‘할머니는 좋겠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 좋은 풍경을 할머니만은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웠다.

     

 누군가는 산소나 봉안당처럼 떠난 사람을 기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놓으면, 산 자들이 삶에 지치거나 그 사람이 그리울 때 한 번씩 들를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좋다고 했다. 내게도 봉안묘가 그런 장소가 될 거로 생각했으나 그곳에 간다고 한들 무거운 마음이 녹는 경험은 거의 하지 못 했다. 이미 텅 비어 있을 봉안묘 앞에서 내가 그 이름을 부르고 울부짖은들 그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휴대폰 사진첩에서 할머니의 웃는 사진을 보거나 할머니가 남기고 간 묵주 반지를 만지는 행위가 내게 더 큰 위안을 주었다. 그 사람이 마지막에 머문 한 자리에만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할머니가 십 년 넘게 사용했던 안방의 귀퉁이에서 쓰고 있는데, 도리어 이곳이 할머니의 집이자 방이라는 생각을 한다. 교외의 낯선 봉안묘보다 이곳이 당신께 더 익숙한 곳일 테니까.     


 할머니가 떠난 후 한동안, 내 아이는 이 집에 들를 때마다 ‘왕 할머니는 어딨어?’를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에게도 왕 할머니가 어떤 향기를 띤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 늘 이곳에 오면 있던 왕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진 것에 의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가족들의 답은 ‘어디 멀리 가셨어.’로 통일됐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모두 자연스럽게 그 말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더 이상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디 멀리 가신 분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문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책과 유치원에서 ‘죽음’에 대해서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고 그 실례가 내가 알던 왕 할머니에게도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 같았다. 아이의 받아들임과는 별개로 아이가 왕 할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했던 말들은 내게 어떤 안도 같은 것을 갖게 했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왕 할머니 어디 갔지?”

 “왕함미 나무 됐어.”     


 발음도 신통치 않던 시절 아이가 한 말은 어떤 의도나 지식이 없었음에도 진실 그 자체였다. 할머니가 나무 유골함과 함께 흙 속으로 스며 봉안묘 주변에 우거진 나무 일부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개체가 되어 이후의 모든 시간을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사셨으면. 인생의 현자 같은 말을 하던 아이는 조금 더 머리가 크며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왕 할머니 하늘나라 갔어?”

 “맞아. 나이가 많이 들어서 가신 거야.”

 “(봉안묘를 가리키며) 그럼 여기에는 누가 있어?”

 “왕 할머니 몸만 있고 왕 할머니 마음은 하늘로 갔어.”

 “왜 몸은 여기 있어?”

 “그건 엄마도 잘 모르겠어. 하늘로는 못 가져가나 봐.”

 “그럼 마음은 하늘나라 어떻게 가는데?”

 “그것도 엄만 잘 몰라. 나중에 알게 되면 알려 줄게.”

 “엄마, 혹시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오는 거 아냐?     


 안전하게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할머니의 마음을 떠올린다. 아니, 올라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상과의 연결 통로로 사다리를 붙잡고 오르내리는 할머니를 상상한다.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 한 번쯤 내려와 잘살고 있나 살피는 할머니를 상상한다.      


 장례식장에서 서로 아름다운 화해를 이룬 것 같던 친척들 간에 다시 소원함이 생겼다. 오랜 세월을 묵혀 온 서운함과 원통함은 그 며칠 간의 시간 사이에 눈 녹듯 사라지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걸어 놓은 마법이 다 풀려버린 것 같았다. 할머니의 기일에 모이자는 권유에도 다른 날짜에 따로 가겠다며 빠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꼭 모두가 동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장례식장에서 속을 다 토해내듯 울던 사람들이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이상했다. 다시 서먹해졌고 연락하는 횟수도 뜸해졌고 더는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또 다른 경조사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서로가 사는 모습도 모른 채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살게 될 것 같다.

 그동안 사촌 동생 둘이 아이를 낳았다. 어린 꼬물이들의 사진이 이 메신저 창에서 저 메신저 창으로 전송됐다. 할머니가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아가들이었다. 할머니가 나무가 됐다는 발언으로 이 가정의 신비로운 예언자라도 된 양 칭송받던 아이는 막둥이의 자리를 그들에게 물려 주었다. 더 어린 아기가 태어나자 이제 유치원생이 된 내 아이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요새 아이는 학습만화를 먹어치우듯 읽어가며 신체의 기능과 노화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배우고 있다.


 할머니 묘원 앞에 갈 때마다 있던 꽃다발은 시간이 지나며 사라졌다. 봉안묘를 모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넷째 삼촌과 고모는 보랏빛이 도는 꽃의 모종을 사 와 그 곁에 심었었다. 조그만 꽃병에도 색색의 꽃을 담아 할머니가 잘 볼 수 있도록 두었다. 다음 방문자들은 보랏빛 꽃을 보며 그들의 효심에 눈물을 흘렸다. 먼저 방문한 사람이 뭔가를 해 놓고 가면 다음 방문자가 그걸 보고 감동하는 식이었다. 몇 달간은 그런 루틴이 반복됐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았던 꽃모종은 오래가지 못했고 덥수룩하게 자라나는 잡초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잡초가 수북한 묘소는 아무래도 싫은 법이라, 가족들은 방문할 때마다 이 꽃 저 꽃을 가져갔지만 모두 다 오래가지 못했다. 묘원 관리인은 시든 꽃을 속속 치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플라스틱 조화가 꽃병에 꽂혀 있었다. 해바라기와 장미. 할머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꽃이 그저 ‘꽃’이라는 이름만으로 선택된 듯 거기에 있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악한 모습이었지만, 할머니는 그 또한 기쁘게 받았을 것이기에 그대로 두었다. 아이는 왕 할머니에게 주고 싶다며 색 클레이로 무언가를 만들었다. 동그란 모양에 눈처럼 보이는 점이 콕콕 찍혀 있는 작품이었는데 할머니 얼굴이냐고 물어도 자꾸 아니라고만 하고 대답을 피했다. 어쨌거나 정성 들여 만든 선물이니 할머니 봉안묘 위에 두고 기도를 하고 왔었고 다음 방문 시에는 치워져 있었다. 이제 먼저 방문한 사람이 뭔가를 해 놓고 가면 다음 방문자가 그중 지저분해진 것을 치우는 방식으로 루틴이 바뀌었다.


 그동안 비어 있던 옆 봉안묘에 새로운 이웃이 들어왔다.

 할머니의 봉안묘 앞에 더는 화려한 꽃이 놓이지 않게 됐다.

 그해 여름 나는 할머니의 묘원 방문을 건너뛰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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