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시큰둥했던 과일도 집 밖에서 먹으면 맛있는 법이다. 할머니 댁 사각 유리통 가득 준비된 포도. 별이는 경계하는 듯하더니 하나 맛을 본 다음부터는 참새처럼 입을 벌리고 식탁으로 달려왔다. 엄지와 검지로 껍질을 눌러 포도알이 잘 보이게 해 주면 별이는 입을 가져다 대거나 손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몇 알을 먹다가, 거실 소파에 있는 우리 아빠가 보였다.
- 별아, 이거는 할아버지 드리고 오자.
별이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 안돼! 안돼! (정확히는 ‘안도야’에 가까운 발음을 한다)
- 왜애?
- 포도를 먹으며언 보라색이 돼!
어쩌면 이리도 귀여운 핑계가 다 있을까. 할아버지가 포도처럼 보라색이 될까봐 주지 않는다니. 그러면서도 별이는 자기가 보라색이 되는 건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포도알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번엔 엄마를 준다. 지켜보던 할머니가 별이에게 묻는다.
- 별아, 엄마는 포도 먹어도 돼?
- 응!
- 엄마는 보라색 안돼?
- 엄마가 포도를 먹으며언~ 맛있어!
그 대답에 지켜보던 모든 가족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별이 엄마는 맛있는 포도를 그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2.
색 개념을 알게 된 별이는 종종 이런 표현들을 한다.
- 수박을 먹으면 가니가 돼. (빨간색)
- 엄마 차는 포비야. (흰색)
- 저기에 황금차가 있어.
마치 천사의 언어처럼 들린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언어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사랑스러움이고 이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이런 감사함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마음으로 별이에게 뽀뽀하며 말했다.
- 엄마는 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 엄마! 별이를 좋아하며언~ 별이가 돼!
아이의 대답에 그만 눈물을 흘릴 뻔했다. 30여 년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정교하게 세워 온 '사랑'에 대한 정의를 세 돌도 안 된 별이가 말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의 시선과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된다. 그 사람의 평온과 행복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 일이 아주 사소할지라도, 또는 아주 버겁더라도 기꺼이 한다.
나는 별이를 아주 사랑하기 때문에 아기말을 함께 쓰거나 같이 엉덩이춤을 춘다. 같은 그림책을 여러 번 함께 읽고 아기가 부딪힐만한 곳에 폭신한 완충재를 덧댄다. 별이가 심하게 울 때에는 나의 치밀어 오르는 감정과 짜증을 잠시 내리누르고 그 원인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별이가 살아갈 미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별이가 평온한 마음으로 살며 살아가는 것을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나는 별이 자체가 될 수 없기에 그저 노력할 뿐이다.
많은 시간을 거쳐 내가 정의한 '사랑'이다. 이 모든 걸 모를 때부터 내가 그런 사랑을 필요로 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언어로써 명확해졌다. 사랑의 개념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살려고 하니 부딪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연애와 결혼을 거쳐 아이까지 낳은 상태였으므로 이제 와서 '그 사랑이 그 사랑이 아니'라는 이유로 새 삶을 살 힘이 없었다. 어쨌든 내가 한 선택이자 약속이고 그러므로 그 책임도 내게 있었다.
그때 바로 별이가 그 말을 한 것이다.
별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줄곧 해 왔던 생각이다. 나는 작은 친구를 얻었다. 이 친구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준다. 돌려받지 못해도 문제 되지 않는 진심이다. 왜냐하면 나는 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말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 못 할 그런 사랑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