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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누 Nov 01. 2022

제발 그만 토하고 싶어요

"웁!"이 아니라 "부웨에에에에에엑"이더라

‘구토’는 나의 열 달간의 임신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막달에 이르기까지 최대 1일 10토의 기록을 세웠으며, 최소 2일 1토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임신의 시기에 따라 구토의 양상 또한 달랐는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는 역시 임신 초기의 입덧이었다.


드라마에서 본 초기 입덧은 "웁!" 하며 시작되던데, 실제로는 "부웨에에에에에엑"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공복에 심한 메스꺼움이 와서 뭐라도 항상 먹어야만 하는 먹덧까지 합해졌는데, 먹고 나면 곧바로 게워내고 노란 위액과 초록색 담즙까지 쏟아내며 얼굴과 눈동자의 실핏줄이 다 터지도록 토를 해댔다. 입덧이 가장 피크를 찍었을 때는 하루 종일 몰아치는 극심한 메스꺼움과 두통으로 손을 덜덜 떨었다. 입덧 약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부작용이 심해서 도움을 받지 못했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래야 했다. 이때는 해도 너무하지 않냐며 허공에 욕을 한 적도 있고, 태아를 모체에 기생하는 생물로 분류하는 견해가 있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져서 논문을 찾아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 고통 속에서도 점차 뱃속의 아기와 정을 쌓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간중간 정기 검진을 가서 아기의 힘찬 심장소리를 듣고, 초음파를 보며 하리보 곰젤리 같은 모습의 태아가 팔다리를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처음으로 내가 끔찍이도 아끼는 우리 집 강아지보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눈물 나게 토하면서도 그 고통은 너무나 당연히 버텨내야 하는 일이 되고, '입덧이 심한걸 보니 아기는 잘 있나 보네' 하며 안심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3.5cm 밖에 되지 않는 아기가 팔다리를 꼼지락 거린다


그토록 끔찍했던 초기 입덧은 16주~20주에 걸쳐서 서서히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입덧이 끝나면 신나게 먹는다던데 나의 경우에는 구토가 아예 멈추지는 않았다. 다만 하루 종일 메스꺼운 것이 아니라 식사 후에만 메스꺼움과 두통을 겪다가 먹은 것의 일부를 게워냈다. 그래서 아침과 점심밥을 적당히 소식하고 저녁은 간단하게 미숫가루나 쉐이크로 때우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덕분에 임신 기간 내내 체중이 심하게 증가하지도 않았다.


막달이 되면 또 다른 느낌의 구토를 하게 된다. 아기가 너무 커져서 뱃속에 위장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에 한계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아기가 살찌는 시기라 그런지 식욕은 넘쳐나서 생리 전 증후군 때처럼 눈이 뒤집혀서 먹게 되는데, 위장의 용량을 초과하여 먹으면 분수처럼 토를 해서 용량을 비워내 버린다. 


임신 초기부터 막달에 이르기까지 먹으면 곧바로 토하는 음식도 있다. 이상하게 흰 우유, 초콜릿, 라면, 치즈를 먹으면 메스꺼움과 두통이 오면서 위장을 짜내듯이 괴롭게 토한다. 출산하고 나면 핫초코 한잔 토하지 않고 마실 수 있기를. 라면에 계란 풀어 후루룩 한 그릇 먹을 수 있기를. 아주 소소해 보이지만 그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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