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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Oct 26. 2022

일과 일상의 균형 잡기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몸이 이상했다. 배가 약간 아프면서 계속 소변이 급한 느낌, 막상 화장실에 가면 소변은 잘 나오지 않고(방금 다녀왔으니 당연), 배꼽 아래에서부터 전신에 짜르르함이 번지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평소처럼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하려는데, 학교 정문까지 가기 도저히 힘들 것 같아 중간에 육교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출근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도 참기 어려운 요의가 느껴져서 몸을 비비 꼬다가 이게 말로만 듣던 급성 방광염 증상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출근을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일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버스에서 내려 주변에 있는 병원에 가서 소변검사와 진료를 받고(급성 방광염이 맞았다), 그대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는 아까처럼 심하게 아프지 않았고 한결 상태가 나아졌다. 그리고 아프니까 약간 감상적이 되어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고, 집 근처 서점에 들러서 읽어보려고 마음에 두었던 책 두 권을 샀다.


신문, 인스타, 브런치 등 여러 경로로 여러번 책 소개를 접하면서,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지 라고 마음먹었던 책들


두 권의 책 중에 조금 더 읽기 편해 보이는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를 먼저 읽었다.

오후 내내 침대에 앉아 다리에 이불을 덮고, 등을 벽에 기대고, 등 뒤 창문에서 비추는 햇빛에 작가의 5도 2촌 생활을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으로 읽었다. 단숨에 쉬지 않고 읽히는 편안한 책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이 책의 출판사(자기만의 방) 소개서가 나왔다.


책을 주제별로 묶어서 룸넘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열거한 것이 색다르고 독특하다.


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의 제목과 주제가 대부분 마음에 들어(취향저격)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찬찬히 살펴보니 이미 읽었던 책도 몇권 있었다(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그래서 오늘 도서관에 간 김에 여러 마음에 드는 제목 중 딱 두 권의 책을 골라 빌려 왔다. (욕심내서 많이 빌리면 기한 내에 다 못읽는다)



빌려온 두 권의 책 중에서 캠핑 책(작은 캠핑, 다녀오겠습니다 / 제목부터 좋다)을 먼저 읽어보는데, 서문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많은 걸 놓아버리지 않고도 우린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일상과 캠핑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느슨한 연대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어제 읽었던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에도 비슷한 문구가 있었다.


이 집을 찾고 고치기 시작했을 때,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중략) 그런데 육체노동을 그렇게 하는데도 오히려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주말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일이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서인지, 마음도 더 단단해졌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었다. 그때부턴 이상하게 서울로 돌아가는 일요일 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그때 알았다. 나는 일이 싫어진 게 아니라, 일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을 뿐이라는 걸.


어제 오늘 읽은 책에서는 일과 일상의 균형, 상호보완을 이야기하는데, 요즘의 나는 일하기가 너무 너무 싫다. 조급하고 쫓기는 상태가 싫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쫓긴다. 예정에 없던 의뢰인의 연락과 상황들이 시시각각 발생하고, 돌발적인 일에도 신속하게 응대해야 내 속이 시원하다. 당장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휴대폰 메모장에 할 일 목록을 적어놓는데, 그 목록이 쌓여가면 마음이 답답하면서 쫓기는 기분이 든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우발적인 일들 때문에 원래 했어야 하는 업무가 밀리는 상황도 너무 너무 싫다. 이번 주에는 오랜기간 공들여 왔던 사건의 최후변론 PPT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특히 더 마음이 조급했다. 그래서 몸에 병이 났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 마음의 추가 자꾸 일에서 일상으로 급속도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살면서 '일하지 않는 삶'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나는 전업주부를 할 수 없는 유형이라고 생각했고, 사주에서도 역마살 비슷한 게 있어서 밖에 나가서 일해야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육아휴직 중인 남편을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살림과 육아를 맡는다면 남편보다는 훨씬 재밌고 즐겁게 잘할 것 같다. 우리집 고정비를 점검해봤는데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고, 나는 꽤나 알뜰한 편인데다 시간 부족으로 지출하게 되는 비용도 있으니(예를 들어 외식비나 청소비) 남편이 복직하고 내가 전업주부를 한다면 남편 급여로도 충분히 알뜰살뜰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망상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일하기가 점점 더 싫어진다.


그러던 중에 "많은 걸 놓아버리지 않아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문장과 "퇴사를 마음먹고 시골집을 찾아서 고쳤는데 오히려 시골집에서의 충전이 일하는 데 동력이 된다"는 구절을 만났다. 나도 직업을 그만두려는 생각보다는(마음에 걸리는 몇몇 사건들 때문에,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다시 균형점을 찾아봐야겠다. 일과 일상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선순환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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