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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an 07. 2023

<밝은 밤>

따뜻하고 착한 소설을 읽고 싶을 때

   그림은 실험적인 것을 즐기고 영화는 B급을 더러 좋아하기도 하지만 음악은 귀에 익은 것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문화적 취향이라고 큰 범주로 묶는다면 조금 덜 보편적인 쪽에 마음이 기운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읽을 때 그런 면이 제일 많이 반영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런 취향의 문제를 걷어내고 말해야 한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소설과 흥행에 성공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구조를 갖고 있긴 하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익숙한 것에서 오는 감동을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익숙하기 때문에 감동이 덜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엄마 미선과 딸 지연이 서로의 진심을 알지 못하고 날 선 대화를 주고받을 때나 새비 아주머니의 죽음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도 예전과 다르게 자주 눈물을 흘리긴 한다.)


   4대에 걸친 여성 중심 서사에 우리 역사를 녹여낸 것 또한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당연히 역사와 무관하게 살 수 없기 때문에 개인사에 역사가 녹아들어 갈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역사를 담아냈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거시적 역사 앞에서 무력했던 개인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바깥에서 벌어진 일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증조부가 대의에 감화되어서 백정의 딸인 증조모를 구해냈지만 가정 안에서는 그 대의를 실천하지 못했듯이, 우리 역사 속에서는 남성 중심으로 쓰인 역사 안에서 희생되었던 많은 여성의 역사가 있었고, 그들의 묻혀있던 목소리가 역사를 평가하는 다른 시선으로 드러나는 중인데, 소설은 그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딘가 우리와 너무 닮은 인물들이라서 누구라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중 하나에 빗대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나치게 굴곡진 삶이 아닌 평범한 개인의 상처와 관계의 문제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처와 관계의 미묘한 문제들은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유려하지 않은 문장으로 쓰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작가의 섬세한 시선과 담백한 문장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소설은 천명관의 <고래>라는 작품인데, 분위기와 색깔은 사뭇 다르다. 강렬함과 매혹에 대해서 말한다면 아무래도 <고래>를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한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다.’라고 한 대목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자명하다.(오래전에 읽은 것이라서 지금 다시 읽는다면 바뀔 수도 있다.) 

  많이 읽히는 소설은 그만한 장점이 분명히 있고, 그것이 가장 큰 미덕이며, 그 미덕은 어김없이 나에게는 일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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