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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an 09. 2023

<분더카머>

지독하게 파고드는 언어에 대한 사랑

   형용하기 힘든 어떤 감정과 대상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하다 보면 종종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어떤 미묘한 감정이 나에게 찾아왔는데, 그 감정은 한 단어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것이며,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총동원해서 말해보아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듯해서 속이 후련하기는커녕 소화가 덜 된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 한계에 대한 깊은 절망감과 어떻게든 도전해보고 싶은 희망이 끝없이 길항하면서 이 작가의 문장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길고 긴 나열과 다양한 비유를 비롯해서, 비슷하면서 다른 사물들이 총동원되면서 끝을 더듬어가야 하는 문장이 길을 알 수 없는 곳을 돌고 돌아서 마침표를 향해 간다. 아니, 마침이 된다고 할 수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른 상념과 이미지들이 좀 전에 떠올랐던 감정과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단어들 사이에서 헤엄치다가 또다시 중심을 향해서 가기 위해 허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 다시 늘어지고 또 늘어질 것이다. 


   언어와 사물 간에 존재하는 끝없는 미끄러짐, 비껴감에 대해 예민한 작가는 결국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고, 어쩌면 목적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동어반복에 천착한다. 사물의 이름을 정의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동어반복 외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은, 감각은, 감정들은 모두 언어에게서 계속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 말을 하고 또 하고 할 수밖에 없다. 동어반복적 표현이든, 전혀 무관한 사물이든 할 것 없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어떻게 해서든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 애를 써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야 마는, 확인하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그 끝에 심장을 뚫어버리는 칼끝이 있더라도 가봐야만 하는, 호기심과,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더카머, “호기심을 북돋는 경이로운 사물들의 방”, 그 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혹은 우리 안에 들어있는 방 속 사물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더듬어 볼 수밖에 없고, 그것에 관해 먼저 생각하고 쓴 작가는 우리에게 길을 내주는 작가다. 분명 그 속에는 부끄러움과 침울함, 밝히고 싶지 않은 내밀함이 있지만 다 말해보지 않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작가는 일단 갈 수 있는 곳까지, 더 깊이, 들어가서 말한다.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줘도 해야만 할 것이다.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것에 대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으므로. 

 

* 좋았던 문장 몇 개

- 28쪽. 문학은 만병통치약이다. 라블레의 약장수 수사법은 효과가 의심쩍은 당대의 비과학적 민간요법을 우회적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병의 영역과 치료의 대상을 신체에서 정신으로 전이시킨다. 읽고, 웃으면, 낫는다. 말은 마음을 고친다. 

- 43쪽. 이런 식으로 이야기와 문단과 말은 자기를 발생시킨 다른 이야기와 말과 아직 말과 이야기가 아닌 것들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고 거스름 속에 도랑을 낸다. 유혹하는 기원을 향해 끊임없이 시선을 돌리며 뒷걸음질한다. 갈 길이 먼데 아무리 시작해도 시작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다. 

- 157쪽. 음악에 대한 내 특수한 사랑의 방식이란 마치 배내 옷에 감싸인 갓난아기나 고치 속의 애벌레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소리 껍질에 나를 전적으로 내맡기며 의존하고 애착하기다. 말에서 드물지 않게 겪는 황량과 피폐를 음악 안에서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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