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콜릿책방지기 Feb 15. 2023

<고리오 영감>

자식에 대한 집착의 끝을 알고 싶다면

  장사 수완이 좋아서 부자가 된 고리오 영감은 사랑하던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서, 두 딸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붓는다. 무릇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나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이라서, 고리오 영감의 딸들도 역시나 비슷한 길을 걷는다. 돈의 가치를 모르는 것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동전 한 닢까지도 털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조차 알지 못한다. 고리오 영감의 비참한 말로는, 우리 주변에서도 익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뻔히 예견할 수 있다. 


  <사촌 퐁스>에서 봤던 예술품과 미식에 대한 집착이 이 소설에서는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변주된 것처럼 보인다. 퐁스도 그렇고 고리오도 그렇고 어느 한 가지 욕망을 향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신하는 인물은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는 결론은 동일하다. 그런데 <고리오 영감>이 초기작이라서인지, 등장하는 인물들의 현실적 면모의 날카로운 면은 <사촌 퐁스>에 조금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퐁스라는 인물 자체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고리오 영감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무모하게 돌진한다. 하지만 고리오라는 인물의 단조로운 면을 보완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성공을 향한 욕망으로 타오르는 젊은이, 라스티냐크다. 


  아마 라스티냐크가 없었다면 <고리오 영감>은 너무 단조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주요 줄기를 담당하는 라스티냐크 덕분에 고리오의 이야기가 풍요로워지고 있다. 라스티냐크는 사교계에서의 성공을 갈망하지만 고리오의 깊은 부성애 앞에서 흔들리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냥 약삭빠르지도 않고 그저 순수하지도 않은 성격을 보여주면서 입체적 인물로 살아있게 된다. 또한 우리는 라스티냐크를 통해서 드 보세앙 부인과 고리오 영감의 두 딸들을 만나면서 사교계의 이면을 알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보케르 여관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파리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생생한 면모를 만날 수 있다. 


  라스티냐크가 소설의 중심축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명백히 고리오 영감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귀족 출신인 라스티냐크와, 고리오 영감이 대표하는 벼락부자가 된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발자크가 방점을 찍은 곳은 어느 곳인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돈의 속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르주아가 가장 비인간적으로 보일 것 같지만, 고리오 영감의 재산을 집어삼키고 장례식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두 귀족 사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딸들에게 마지막 한 푼까지 다 주고 나서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로 돌아간 고리오를 보면, 그것이 가장 순수한 열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음과 맞닿은 열정으로 다 던져버리고 소진해 버리는 삶이, 어쩌면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으로 더 살만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와 독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