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니나는 역시 영원한 니나

by 초콜릿책방지기

독후감은 제때 쓰지 않으면 모두 날아가버린다. 모든 것이 때가 있겠지만 특히 글로 남겨야 하는 것들은 때를 놓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생의 한가운데>라고 출판된 책으로 읽었을 때 독후감을 제대로 남겨두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때 남겨두지 않은 것들은 모두 희미하고 어렴풋한 인상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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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책으로 선정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되면서, 몇 번이나 집중할 수 없는 이유를 되묻게 되었다. 이전에 그렇게 뜨거웠던, 흠모하던 감정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 앞에서 무력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시간이 빼앗아 갈 줄은 몰랐다.


니나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20여 년이 흐르고 난 뒤 다시 만난 니나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살아낸 광적인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모두 끝나버린 시대라서 그런 것일까. 이제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들은 이념이 아니라 환경오염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당면해있는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그녀에게 몰입할 수 없었던 것이 서운했던 만큼, 좀 더 객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는 있었다.(고 본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산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제 더 이상 불 같은 열정으로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니나는 제대로 삶의 한가운데서 살지 않았던 것일까.


다시 읽으면서 느낀 것은 니나는 제대로 삶의 한가운데서 살았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한 여자로 불꽃처럼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는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행동에 옮겼기 때문이다. 시대가 주어진 과제 또한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실천한 인물이다.


니나가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것이다. 그 존엄성을 스스로 혼자 지키는 것뿐 아니라 상대의 존엄함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니나가 살아가는 삶의 핵심이다.

니나의 행동과 선택 하나하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니나가 친척 할머니의 죽음을 지키는 것(존엄한 죽음), 결핵에 걸린 신학도를 돕는 것(유약한 인간에 대한 동정), 정신병자 안락사 반대(정상성의 기준에 대한 반대), 독일 군인을 도운 한나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애가 우선시 되는 점), 퍼시에게 독약을 주는 행동(죽음을 선택할 권리)들이 모두 인간 존엄성 문제에 일관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월한 독일인 유전자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치 정권하에서 니나가 주장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다. 비단 나치 정권 아래서가 아니라도, 지금도 여전히 병과 장애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 대접받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니나는 지금도 유효한 가운데, “삶의 한가운데”에서 삶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제 니나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제시해주고 함께 가자고 말하는 인물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영원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치 있다. 그리고 문학이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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