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왐마, 보소 뭣땀시 자지러지는당가? 뭐라고라요?
쩌~그 모노레일 땜시 그란다고라?
쩌거가 뭐이 워쩐다고.심장이 벌렁벌렁하다고?
일단 타봐야. 생각보다 안무섭다 안하요.
쩌거슬 딱 타고 무등산 한바쿠를 휘 돌면 광주 땅이 엔간치 내리다보인당께라.
가을바람 사라락~ 불믄 기분이 허버 좋아불제.
쩌거가 요즘 광주에서 겁나게 인기라 안허요.
광주 사람들만 알던 곳인디 요즘엔 많이 알려져
외지 사람들도 광주 왔다가 쩌거슬 꼭 타고 간당께.
꽃피는 봄이랑 단풍드는 가을이 좋제.
딱 맞게 온 것이지라.
얼레, 근디 광주가 처음이라고?
뭐단다고 이 좋은 디를 처음왔을랑가?
쪼까 그시기하네. 그라도 인자라도 왔으니 다행이다 안허요.
자 싸게싸게 구경한번 해보입시다”
아재를 만나자마자 무등산 모노레일 이야기를 꺼냈더니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맞다. 이번 광주 여행은 이것만 보고 왔다. 지난봄 우연히 온라인에서 찾은 사진 한 장. 무등산의 짙은 녹음 사이를 비집고 두 줄의 노란 레일이 보인다. 그리고 외줄 레일을 따라 알록달록 기차 하나가 지나간다. 사진 속 탑승객들의 몸 절반이 허공에 노출된 모습이다. 처음에 보고는 새롭게 들여온 ‘복.고.풍.’ 놀이기구인 줄 알았다. 우리나라가 맞는지부터 의심했다. 경험상 저리 허술해 보이는 것의 출처는 열에 아홉 대륙(중국)의 것이지 않았던가. 아니 저건 보도듣도 못한 모노레일이다. 찾아보니 광주 무등산이란다. 무등산? 왜 여태까지 몰랐지. 호기심이 마구 동했다.
모노레일의 형태부터 색감까지 요즘의 느낌이 아니라 80년대 감성을 품고 있었다. 여느 지자체처럼 최신식의 모노레일 대신 B급 감성이 물씬 담긴 장난감 같은 모노레일을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촌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정겨움이 느껴지는 B급 감성이 의도된 건 아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내는 데엔 아린 배경이 있었다.
모노레일이 위치한 곳은 지산유원지. 1978년 4월 개장한 지산유원지는 광주의 진산 무등산 향로봉(364m) 기슭에 총 34만5000여 평 규모로 만들어졌다. 오픈 당시 지산유원지는 광주 최고의 명소였다. 유원지 최정상부인 향로봉에는 전망대인 팔각정이 있어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고 리프트카로 사람들을 산 정상까지 실어날랐으며 정상에 올라선 ‘호남관광열차’라는 모노레일을 타고 세련된 방법으로 무등산을 구경했다. 대형골프연습장 시설과 바이킹, 범퍼카 등 10종의 놀이기구를 갖춘 복합 레저단지였다. 하지만 2005년 운영업체의 부도로 폐업하고 근 10년 동안 폐허처럼 남겨졌다.
죽은 곳이 돼버린 지산유원지를 볼 때마다 광주 사람들은 마음 한켠이 쑤셨다. 80~90년대 연인들은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였고, 학창시절 가을 소풍 장소였으며 특별한 날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는 추억 그 자체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방치된 유원지가 재탄생한 것은 2016년 겨울의 일. 그해 12월 리프트카와 모노레일 재운항하면서 지산유원지의 부활을 알렸다. 리프트 하차지점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모노레일을 타고 내리는 '빛고을역'을 만들고 20억원을 들여 기존 모노레일을 보수해 재운행에 들어갔다.
현재 모노레일 탑승장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인근 등산로를 따라 탑승장까지 향하는 것, 또 다른 방법은 지산유원지 내 리프트카를 타고 곧장 가는 것이다. 가을 무등산 산책보다 리프트카가 더 끌렸다. 리프트는 무등산파크호텔 오른편 탑승지에서 출발한다. 리프트는 역시 현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흡사 극기체험 같았다. 성인 남자 둘이 앉으면 꽉 들어가는 좌석 사이즈. 허술한 듯 예스러운 리프트는 철봉 하나에 의지한 채 먼 향로봉 정상까지 747m를 간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머리 위 봉을 당겨 허리춤으로 내렸다. 금세 발 받침과 안전바가 만들어졌다. 편도기준 18분 소요. 어린이날처럼 특별한 날엔 방문객 수가 1000명을 훌쩍 넘긴다. 다행히 내가 갔던 날은 한갓진 평일 오후였다. 리프트카는 절반 정도만 손님을 태우고 운행했다. 발아래로 소나무, 단풍나무, 도토리나무 등 색색으로 물든 나무들이 펼쳐졌다. 모노레일의 이용요금은 8000원(성인기준·왕복). 리프트카를 타고 모노레일을 이용할 경우 1만5000원(리프트카 7000원)이 든다.
아슬아슬 리프트에서 탈출(?)해 산책하듯 숲길을 걸어 빛고을역에 닿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이다. 실제 마주한 모노레일은 사진보다 더 멋졌다. 아쉬운 건 단 하나. 아직 무등산엔 단풍이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하고 나면 운행이 시작한다. ‘덜컹’ 하더니 약간의 흔들림과 함께 장난감 같은 모노레일이 출발했다. 느릿느릿 그리고 갸우뚱갸우뚱, 모노레일이 빛고을 역을 빠져나가 산 능선과 파란 하늘의 중간 어디쯤을 달렸다. 오른쪽 어깨너머로 광주 시내가 펼쳐졌다. 출발한 지 12분만에 팔각정(전망대)에 도착했다. 팔각정은 을씨년스러웠다. 폐업한 카페 간판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것이 괜히 쓸쓸했다. 그래도 풍경은 웬만큼 좋았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뭔가 뿌옇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 아스라이 느껴졌다. 광주의 진산 무등산은 몇 천 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몇 천 년 후에도 이렇게 먼발치에 서서 인간사를 그저 말없이 바라보겠지...
“워뗘 타본 소감이?
나가 어릴 쩍에 여기로 소풍도 오고 난중에 다 커서는 데이트도 오고 그랬던 것이여, 여그가. 글다 갑자기 운행을 안허더랑께. 회사가 망해분거여. 요즘 아그덜은 여그를 모르고 컸당께. 그러다가 2016년 겨울부터 모노레일이 다시 움직인다 안허요. 그때 허버 반가워부랐제. 꽃피는 봄마다 모노레일 타고 편하게 무등산 보고 가는 게 겁나게 좋아불제.”
아저씨가 웃자 깊은 주름이 들썩였다. 그때였던 것 같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모노레일에 묻은 세월의 더께가 반짝하고 빛이 난 것이. 과거를 고스란히 담은 모노레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현재를 살아내고 있었다. 세월의 범벅으로 추억이 된 기억은 억만금을 줘도 못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