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썬맨 Oct 24. 2021

세상에서 가장 긴 열차

지구 둘레의 1/3(9,288km)을 7일간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한 달 전이었다. 장소는 우리 집. 아내와 나는 본격적인 세계여행 계획을 세우느라 한참 회의 중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출발하는 시점이 여름이니깐 유럽 같은 유명한 여행지는 성수기가 물릴 거야. 그러니깐 물가가 저렴하고 가까운 동남아부터 시작해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오빠 말도 일리가 있지. 하지만 지금 동남아는 우기 시즌이라서 비가 많이 온데. 그리고 날씨도 최고 덥고 습할 테고. 우리가 장기여행을 견디려면 날씨도 참 중요할 것 같은데.”

“음 그럼 보자 보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동유럽으로 먼저 가서 여름 시기를 보내고 서유럽 쪽으로 갔다가 우기가 끝나면 아프리카와 동남아로 넘어가자 어때?”

“굿굿 그게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집안일의 대부분을 가족회의를 통해 정한다. 그렇게 우리는 컴퓨터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하나씩 동선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우와 그런데 한국에서 유럽으로 바로 가려면 비행기를 엄청 오랫동안 타야 하네?

“나 비행기 장시간 타면 귀가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운데 괜찮을까?”


아내는 기압차가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가 아픈 증세가 있다. 장시간의 비행 동안 아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방법이 없는지 이것부터 찾아봐야겠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왔다. 


“왜 서울에서 꿈프로젝트 할 때 민조가 그랬잖아. 기차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유럽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머리 위로 전구가 반짝했다. 손뼉을 마주치며 아내의 아이디어를 격하게 공감했다. 

“오! 맞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육로로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오예스~(하이파이브)”


그렇게 우리는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부산에서 러시아로 넘어가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상당수의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아내의 비행 통증은 여행을 앞둔 우리에겐 위기요소였지만 이는 곧 육로 이동이라는 기회요소를 위한 계기가 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하는 열차. 애니메이션에 우주를 여행하는 은하철도 999가 있다면 이 세상에는 지구 둘레의 3분의 1을 여행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있다. 


러시아 동부 해안도시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하바롭스크-울란우데-바이칼 호수를 지나-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보시 비르스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를 잇는 유라시아 9288km를 가로지르는 세상에서 가장 긴 기차. 평균 시속 80~90km의 속도로 6박 7일간(156시간) 동안 달리며 열차가 달리는 동안 경도차에 따라 시간이 일곱 번이나 바뀐다고 한다. 총 90개의 크고 작은 러시아 도시를 지나가며 무려 16개의 강을 건너간다. 소개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지 않는가. 

우리는 방금 그 열차에 탑승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타던 의자형태의 객실이 아니라 언제든지 누울 수 있도록 침대가 세팅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7일간 먹고, 자고, 생활을 하게 된다. 누워서 달리는 지구 1/3 여행. 열차에서 내리면 우리는 어느새 유럽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탑승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역
기념비적인 역 앞에서 인증샷
무려 9,288킬로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이전 14화 러시아에서 대~한민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