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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맨 Oct 24. 2021

소중한 것 내어놓기

시베리아횡단열차(2일차)

어느덧 횡단 열차 2일째 날이 되었다. 아내는 배 아픈 고통이 조금 사그라 들었는지 어제보다 훨씬 괜찮아 보였다. 어제 있었던 횡단 열차 반상회 이후 열차 내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보다 북부지방인 러시아는 추울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한낮의 여름은 우리나라만큼 후끈하다. 반면 일교차가 심한 편이어서 야간 시간대는 추운 편이다. 예상치 못한 일교차에 밤잠을 설친 것 같다. 


이른 아침 모두가 잠들어 있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또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나 싶어 화장실에 갔더니 그곳에도 없었다. 어디 간 건지 불안한 마음에 찾아 나서는데 아이고 아내는 엉뚱한새댁 아니랄까 봐 같은 칸 반대편 라인에서 두 러시아 꼬마 소녀와 놀고 있었다. 스마트폰과 터치펜을 꺼내 든 아내. 열차 안에서 갑자기 미술수업이 진행되었다. 아내는 한국과 호주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경험을 떠올리며 말은 안 통해도 행동으로 하나씩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터치펜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게 신기한지 아이들은 아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이쁘게 선을 그으며 킥킥거린다. 


“선생님 이번엔 저희가 놀이를 가르쳐 줄게요.”


아이들이 뭔가를 보여주려는 듯 자기들이 가지고 놀던 고무줄 묶음을 꺼내더니 엮어서 이것저것 만들기를 보여준다. 경력이 좀 있는 건지 따로 설명서 같은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손놀림이 매우 능숙하다. 


“여보, 어떻게 이 애들하고 놀게 된 거야?” 

“응 저쪽 화장실이 사람이 있어서 반대쪽을 이용하려고 왔는데 애기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처음엔 그게 신기해서 다가갔는데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그림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아서 놀고 있었지.”


역시, 호기심 많은 아내의 레이더망에 아이들의 귀여움이 풍덩 들어왔나 보다. 그렇게 시작한 사제간의 인연. 아이들은 아내가 좋은지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장난을 친다. 아이들이 보내는 순수한 미소에 아내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 할머니는 손주들이랑 놀아줘서 고맙다며 “스파시바”라는 인사를 계속 건네며 미소 짓는다. 나는 이들의 이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는 상당수의 현지인들이 타고 있다. 우리처럼 여행 목적으로 풀코스를 타는 사람들보다는 개인적 이유로 필요한 구간만큼만 타고 내리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보자기 짐을 메고 도시에 사는 아들딸네를 다녀오는 할머니들도 많고 휴가 나온 군인들도 많다. 우리 꼬마 소녀들과 할머니가 내릴 시간이 되었다. 하루 만에 정이 많이 든 건지 이제 내려야 한다며 인사 나누고 아내를 꼭 끌어안아준다. 아 아쉽게도 나는 안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뭐 괜찮다. 하하. 꼬마 소녀들은 이별의 선물로 고무줄을 수십개 엮어 만든 팔찌를 건네준다. 이별의 징표인 것 같다. 자기들이 가진 소중한 보물 1호일 텐데 일부분을 떼어서 선뜻 아내에게 내어준다. 


문득 그 장면을 바라보며 참된 나눔의 마음은 저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났던 친구들 중에도 성공을 하고 나면 베푸는 삶을 살 거라는 계획을 말한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진정한 나눔은 1억 원이 있을 때 천만 원 기부할 줄 아는 배포보단 천 원을 가졌어도 백 원을 떼어줄 수 있는 귀한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여행을 통해 우리의 시간과 재능을 일부 떼어 누군가 이름 모를 이의 꿈을 응원하는데 쓰고 있다. 세속적인 눈으로는 무모하다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나는 지금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나누며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소중한 보물을 일부 떼어주간 이 귀여운 꼬마 아이들의 마음처럼, 우리의 꿈 프로젝트도 순수함이 변질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 


바이 바이 꼬마 숙녀들. 귀한 것을 나누어줘서 고마워요. 바르고 이쁘게 자라길 바라.


아내의 그림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인형같이 이쁜 미소를 가진 아이들
할머니는 졸고 계신다
원 없이 푹 잘 수 있는 횡단 열차 내부
카메라 앱으로 장난치기ㅋ
아내에게 자기들의 귀한 팔찌를 선물한 아이들(고마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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