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봄의 새순
처음 밭에 가게 되었을 때는 정말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특히 나무는 더 알아보기 어려웠다.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리면 무슨 나무인지 알겠는데 겨울엔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되었다. 아버님께서 밭 사이사이 나무를 심어 두셨다. 나중에 아이들 보라고 여러 과일나무도 심으시고 밤나무, 뽕나무도 심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엄나무가 우리 밭에 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2016년 4월 어느 날 두 번째 이하선 종양 수술을 받고 좀 쉴 때였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귀 아래 멍울이 벌써 두 번째 생겼다. 이번엔 수술하고 약간의 처짐이 있었다. 침도 맞고 얼굴에 주사도 맞아가며 치료하고 있었다. 마음이 울적해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 어디 갈까 하다가 텃밭이 생각나서 차를 몰았다.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밭에서 나무순을 따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먹냐고 물었다. “이거 정말 좋은 건데 따지않고 그냥 있어서 땄어요. 남의 밭에서 미안해요.” 하신다. 그러면서 삶아서 먹어보라 하신다.
나도 아주머니를 따라서 순을 잘라, 집에 와 살짝 데쳐 먹었다. 정말 봄나물 특유의 쌉쌀한 맛과 독특한 향이 있었다. 어느 순간 한 접시를 내가 다 먹어버렸다. 그 뒤론 봄이 되면 순이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처음엔 올라오는 순을 다 따니까 나무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따면 바로 올라오고, 어느 순간 확 커져버리면 못 먹게 된다. 그리고 언제 순을 땄냐는 듯 푸른 잎들로 무성해진다.
희한하게도 나는 이하선 종양 수술을 세 번이나 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가 늘 4월경이었다. 선생님은 귀 아래에 있고 자꾸 커지니, 그냥 두면 신경을 누른다고 하셨다. 또 혹시 두었다가 암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니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 세 번째는 급기야 로봇수술을 받게 되었다. 처음이 아니다 보니 수술한 자리가 유착이 되어, 의사 선생님도 사람손보다 정교한 로봇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권하셨다. 그렇게 수술을 받고는 바로 퇴원해야 한다.
수술하면서 왜 자꾸 그 자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말을 금방 다 뱉어내지 않는 성격 탓인가 보다. 입속에서 고여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 쉴 때 밭을 찾게 된다. 누구에게 얘기하기보단 자연에서 바람을 맞는 것이 훨씬 위로가 되었다. 답답한 카페는 가기 싫고, 산은 아직 걷기가 부담이 되어, 밭에 차 한잔 들고 가서 많이 쉬었다.
4월에 올라오는 엄나무 순 덕분에 나는 기운을 많이 얻었다. 씩씩하게 올라오는 새싹들과 인사도 나누고 그들에게서 에너지도 받았다. 특히나 수술한 나 같은 사람에겐 엄나무나 머위가 좋다고 한다. 대개 가시가 있는 나무는 독이 없고 염증에 효과가 있단다. 그리고 새싹에게서 ‘나도 나무를 뚫고 올라왔으니 기운 내라’는 메시지를 준다.
조물주는 사람을 만들기 전에 자연을 먼저 만들고, 인간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셨다. 생명체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 자연에게서 도움을 받고, 우리 또한 그들을 보살피면서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
박경리선생님께서 "이 귀한 자연의 이자만 우리가 사용하고, 원금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고 어느 강의 때 말씀하셨다. 원금을 훼손하지 않도록, 오늘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채소를 키운다. 그리고 그 채소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