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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Aug 30. 2023

두 노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2006년 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2014년 겨울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두 분 다 죽기 전 치매와 노환이 있었지만 구십 살이 넘게 사셨으니 이 정도면 천수를 누리고 떠난 셈이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산에서 이십여 년을 같이 살았다. 대학생이 되고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떨어져 지냈고 이후로는 교류가 많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사는 게 바빠서인지 관심에서 멀어졌는지 두 분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멀리서 부음 소식만 들었다.

     

십년 전 할머니의 장례식. 하관하기 전 죽은 할머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지만 정작 울음이 터지지는 않았다. 내가 특별히 눈물이 없고 감정이 메말라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슬펐고 할머니가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떨어져 사는 세월이 너무 길었고 죽음조차 이를 단번에 메우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우습게도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불현듯 한 번씩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구나. 겉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제야 떠난 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들은 처음부터 노인이었고 죽을 때도 노인이었다. 적어도 노인이 아니었던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이 분들의 젊은 시절 얘기를 건너 듣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으로만 남았다. 두 분 모두 나의 결혼과 증손을 보길 간절히 원했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까지도 혼자이니 설령 십년을 더 사셨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다. 받았던 거에 비해 준 게 없었고 그들을 너무 태연히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창시절 전부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성장했다. 이들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텅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적지 않은 지분이 들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덧 내 나이는 오십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머지않아 그들처럼 노인이 될 것이다. 더 이상의 기억이 깎여나가기 전에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곧 대한민국 8~90년대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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