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유 Dec 18. 2023

당신도 부모이기에

영훈의 이야기

영훈은 평소 감정 기복이 적고 표정도 다양하지 못한 편이다. 말수 적고 근엄한 자세를 유지하는 건 그 시대 남성 가장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일희일비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성자와는 확실히 달랐다. 대개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으며 웃거나 인상을 찡그릴 때도 근육의 미동이 크지 않았다. MBTI 관점으로 보면 내향적인 I 와 이성적인 T 의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런 영훈이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했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오랜 암 투병을 계속하다 돌아가셨다. 당시의 암은 발병 후 얼마나 버틸까가 관건일 뿐 죽는 건 기정사실화된 무서운 병이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게 일상이었고 가끔 집에 오기도 했지만 곧 다시 병원으로 갔다. 이미 가망 없는 상태였지만 우리 형제는 몰랐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준 말 때문이었다.

- 엄마는 꼭 나아서 돌아온다. 아빠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니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현실적으로 희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린 우리들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혹시 모를 기적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우리는 어머니의 부재를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시기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뒤에서 이 승산 없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 커다란 나무 십자가와 책, 전단지 뭉치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때 우리 가족은 성당을 다니고 있었는데 얼핏 성당 물품 같지는 않았다.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성당을 나간 거라 독실한 신자도 아니었다. 그게 뭐냐고 묻자 아버지는 니들은 알거 없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방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 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의 고성이 교차되었는데 뜻밖에도 영훈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살면서 그가 이렇게 소리를 질러본 적이 있었던가. 아버지와 성자는 그렇다쳐도 영훈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 상황이 낯설고 공포스러웠다. 형과 나는 겁에 질려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소리만 엿 들었다. 

- 말리지 마소! 내는 뭐라도 할 겁니다. 애미만 살릴 수 있으면 이거 메고 길거리에서 빨가벗고 춤추라 해도 다 할 겁니다.

 - XX이 니 미쳤나! 그게 말이 되는 소리가. 이참에 회사도 다 때려치울래! 

 - 아이고, 애비야 정신 챙기라. 애들은 어쩔라 그라노.

 - 왜 말이 안 되요? 말 됩니다!

          

조금 있다 성자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건 천리교라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물건들이었다. 부부가 같이 십자가를 메고 돌아다니면서 천리교를 열심히 포교하면 기적이 일어나 암이 완치될 거라 했다는 거다. 초등학생인 내가 들어도 어이가 없었고 똑똑하고 이치에 밝은 아버지가 그런 허황된 말에 넘어갔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곧바로 나는 또 하나의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방으로 들어간 영훈이 구석에서 주먹으로 가슴과 방바닥을 번갈아 치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놀란 성자가 달려가 영훈을 아기처럼 감싸 안고 달랬다.

- 당신 와 그라요. 마이 놀랐는가보내. 

 - XX이 불쌍해서 어쩌노. 앞으로 저걸 어떻게 보노. 애미 대신 우리가 죽어뿌야 되는데. 당신이랑 나랑 늙은 것들은 이래 잘 살아있는데.

- 그러지 마소. 안할 겁니다. 내한테 안 한다고 했심더. 그라이 우지 마소. 우지 마소.

- 쟈가 어쩌다 저래 됐노. 없는 집 맏이로 태어나서 고생만 하고 컸는데. 예수쟁이 믿어도 아무 소용없다. 이래 착한 아를 우째 저래 아프게 하노.

성자는 영훈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아버지는 이튼 날 천리교 물품들을 폐기했고 두 남자도 화해를 하면서 집 안은 평안을 찾았다.


그 시절 영훈은 나에게 할아버지였을 뿐 그도 부모이며 아버지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부모로서 헛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영특했던 자식이 하릴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 무딘 노인의 눈물까지 이끌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마흔 넘은 자식도 부모 눈에는 여전히 보살핌이 필요해 보이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 형제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하지만 긴 투병 중인 어머니와 끝까지 희망을 놓을 수 없었던 아버지가 치러야 했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영훈과 성자에게도 결코 편치 않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비록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유년이 외로움과 상처로 얼룩지지 않도록 방파제 역할을 해준 두 노인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리아 유치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