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탓 내 탓 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솔직한 게 도대체 뭔데?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는 내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글 바깥에서의 나는 오히려 '솔직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솔직함'이 나에게는 어렵고도 어렵다. 주로 내 탓을 하며 힘들어 하니, 사람들이 나에게 '남 탓'을 처방하기도 했다. 빙빙 둘러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남 탓을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 오랜 마음의 습관대로라면 남 탓만 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 되겠지만 나는 이제 니 탓도 내 탓도 지겹다. 이건 내가 했던 대표적인 '남 탓'인데, 나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배우지 못한 탓에 모든 관계에 대해서도 불안을 느낀다. 가족에 대한 분노와 원망 또한 나 자체가 되어 있으니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날이면 날마다 가족들과 부딪히며 언성을 높였고, 서로를 탓하다가 결국은 '니 탓'이라는 화살을 되돌려 맞고는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점점 내가 문제라는 데 동의하게 되었다. 가족이 하는 말이 나에게 와서 깊이 박혔고, 나는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렇게 자책에 빠졌다. 실제로도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뿐이라, 탓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바보 같은 내가 세상에 없었다면 내가 세상을 원망할 일도, 가족에게 상처를 줄 일도 없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음에서 원망이 커지니까 결국에는 나 자신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심지어는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을 향한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 '남 탓'을 하는 것을 들으면 나는 그것이 다 나를 향한 화살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대화가 힘들고 사람이 싫어졌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진짜 나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그냥 내뱉을 말도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차마 튀어나오지 못하고 목에 걸려 있을 때가 많았다.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되지 않으니 소통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을 핑계 삼아 변명도 해 봤지만, 이미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너무 사소한 세상 모든 것이어서, 내가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어느 누구든 상처를 입었다. 다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두려워 나는 또 도망쳤다. 차라리 '없는 사람'이 되어서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회피하고 도망치는 일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라는 것을 알아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엇이 우리의 진심일까?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 때 마음수련 명상을 만났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것에 대한 '내 마음'을 비웠을 뿐인데 더 이상 나와 상대가 미워보이지 않게 되었다. 증오의 대상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나의 세상은 훨씬 밝아진 것이다. 현재의 상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데도, 내가 과거의 감정을 덧씌워 바라보는 바람에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부딪힘을 만든 것이었다. 정말, 모든 고통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내 탓'이었다.
그렇게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기 비난'이 오랜 습관이었던 나는 '내 탓'을 하는 삶이 옳다고 착각하는 '자기비하의 오류'에 빠지고 만 것이다. 다시 그 마음까지도 돌아보고 버린다. 어차피 니 탓이든 내 탓이든 그 이면에는 결국 '나'를 위한 마음밖에 없더라. 그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 마음을 버릴 수 있고, 그 마음을 버리면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 남는다.
내 마음을 돌아보고 비우는 마음수련 명상에서는 '니 탓'이 잘못이고 '내 탓'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니 탓 내 탓 모두 버려야 할 '내 마음'이다. 이것을 가끔 잊어서 혼란이 오기도 했으나 이것만 기억하면 정말로 빼기가 쉽기도 했다. 그동안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브런치를 만나 원없이 풀어냈었다. 나는 그 가운데 이러한 내용을 담았던 글 <자기비하의 오류>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가진 마음을 알고 버릴 수만 있다면야, 남 탓을 하든 내 탓을 하든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상에 내 마음과 맞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저 '나'를 알아달라고 외칠 뿐,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온다. 모두가 거짓부렁만 하는 것 같다. 특히 내가. 이렇게 삶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차오를 때면 자연히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마주한 마음의 밑바닥은 생각보다 끔찍하다. 살 마음이 없고, 사랑할 마음이 없고, 함께 할 마음이 눈곱 만큼도 없다.
절망적이다. 예전에 겪었던 어떤 시기처럼 또 한 번 '절망'을 마주한 것 같다. 그러나 짙은 어둠은 먼동이 트기 직전임을 알기에 나는 생뚱맞게 이곳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절망과 부정이 나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밑바닥은 그저 밑바닥일 뿐이다. 사람의 본성은 마음을 담은 '그릇'마저 깨뜨렸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 명상을 하면 누구나 다 확인할 수 있다.
막연하게 머리로만 알다가 이제야 마음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된 것들이 참 많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 모든 삶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 등등. 마음을 버려보니까 나의 진짜 마음은 "살고 싶다"와 "함께 하고 싶다"를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나오는 것 같다. 어차피 밑바닥이라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인정할 용기를 낼 것이다. 어느 쪽을 솔직함이라 하든 절망과 희망이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와 당신이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진심'으로 솔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