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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r 16. 2019

반 발자국만 더 움직이기

프리랜서로 갖고 싶은 태도

 얼마 전에 파리바게뜨 기프티콘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과외 학생한테서요. 몰랐는데 25,000원이나 하던 기프티콘이더군요. 그 가격에 맞춰 빵을 샀더니 산더미만큼이었어요.


 프리랜서가 된 저는 스케줄이 불규칙합니다. 어떤 날은 스케줄이 세 개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또 어떤 날은 텅텅 비어요. 즉슨 제 수입도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더 솔직하자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일로는 아직 돈을 만져본 일이 없어요. 네, 계속 얼마 안되는, 모아둔 돈을 꺼내 쓰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출이 수입에 비례하지는 않잖아요. 교통비며 핸드폰비며 고정비를 내야하니 안정적인 수입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화상 과외를 시작했어요. 적어도 내야 할 돈은 제가 해결해야니까요.


 문제는, 스케줄이 안정적이지 않다보니 과외 운영도 덩달아 불안하다는 거에요.  과외학생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정해져있고 그외 스케줄은 불안정하니까요. 늦어도 과외 30분 전에는 이전 스케줄이 끝나야하는데 10분 전에 끝나서 뛰는 경우가 허다...


 그나마 과외 시간 전에만 끝나면 다행이게요. 수업 시간에 회의가 잡히거나 수업 시간을 넘는 회의가 잡히기도 합니다. 그럴 땐 미리 양해를 구하고 과외 시간을 바꾸는 수 밖에 없어요. 제가 가르치는 친구 중에 고3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 스케줄은 몇 번이나 바꿨어요. 고3인데....


 미안한 마음에 학생이 사는 곳으로 가서 학생 스케줄에 맞춰 과외를 하겠다 이야기했습니다. 학생 말로는 화상 과외 선생님이 실제로 온 일은 한번도 없었대요. 이렇게 실제로 가면 과외비를 못 받아요. 녹화한 영상을 카운트해서 돈을 받는 시스템이거든요. 그래도 갔어요. 모의고사 리뷰는 역시 얼굴 보면서, 옆에서 본문 글 손가락으로 집어 가면서 알려줘야 이해가 잘 가잖아요. 음, 사실 제 변동스러운 스케줄을 이해해주는 학생한테 미안해서 얼굴보고 우유라도 사주려는 마음이었지만요.

 

 그런데 그게 고마운 일이었나 봐요. 과외 가기 전부터 고맙다며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는 귀여운 발언을 하더니 - 평소엔 절대 학생한테 얻어먹지 않습니다 ㅋㅋㅋ- 과외가 끝나고 기어코 기프티콘을 보내주더라고요. 저도 덩달아 너무 신났어요. 만날 서울 구석 구석을 쏘다니는 입장인데 경기도 간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저한테는 먼 곳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 일 하나에 고마워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어요.


 프리랜서로서 저는 요새 갑질의 종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쓰는 기분이에요. 아무때나 불려다니고 아무때나 제안서를 내놓으라는 기업들 요구는 일상이에요. 그렇게 제안서 받고 일 진행 안 하는 일이 100%고요(...) 당일날 전화해서 당장 사무실로 오세요라는 말에 달려갔더니 물어봤던 내용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합격 테스트를 하는 곳도 있었어요. 이런 상황이다보니 누군가가 나한테 고맙다고, 그것도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게 낯설고 고맙고 감동적이었어요. 2만 5천원이 250만원 같은 느낌...!

 

 이번 일로 배운 게 있어요.

딱  반 발자국만 더 움직여야겠다.

사실 경기도를 가는 일이나, 기프티콘을 주는 일, 둘 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일들이 마음에 닿더라고요. 한 발자국도 아니고 딱 반 발자국인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앞으로 반 발자국 더 넣은 프리랜서가 되려고해요. 여러 발자국도 아니고 딱 반 발자국. 그만큼씩만 더 걸어보려고요. 언제 걷냐 싶겠지만 반발자국이 모이면 열 걸음 되는 날 생기겠죠. 안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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