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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pr 11. 2019

나이 서른에 목소리를 찾다

응? 뭐라고?

"한번쯤은 네 의견을 강하게 밀어보지 그랬어."


 연락할 일이 있어 전 회사 선배님 B에게 연락했다가, 퇴사하는 길을 끝까지 챙겨주셨던 A 선배님이 생각나 점심 약속을 두다다 잡았다. 약속을 잡고 나니, 퇴사 길에 A 선배님이 해 주신 질책같은 질문이 생각났다. 왜 항상 네 의견을 죽였냐고. 왜 남들 말에 네가 하려고 했던 것들을 접었냐고.


 그때는, '그러게요...'라고 말을 줄였다. 생각해보니 정말 내 주장을 강하게 밀어본 일이 떠오르지가 않아서. 뭘 해보려고 할 때 팀장님이, 혹은 사장님이 한 마디하면 와다다다 전면 교체한 기억뿐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내가 배운 사회 생활은 까라면 까야지였다는 핑계를 살포시 내밀어 본다.


 전 회사는 나같은 사람에게 적합한 회사가 아니었다. 다들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담당자로서 어떻게든 원하는 그림을 실현시키려고 때로는 격하게 다른 사람과 토론하기도 했다. 나만 빼고.


 갈등 기피 현상이 심한 나는, 남들이 반대한다면 내 의견을 밀고 나가지 않는 편이다. 갈등이 일어나면 소모하는 에너지가 너무 많으니, 그냥 그러려니-하는 게 속 편하다. 부딪쳐서 얻을 게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런 내가 퇴사 마지막 순간에는 '아, 나도 내 주장을 밀어볼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와서 보니 순 착각이다.


이미 바쁘다. 이미 바뻐.


 나는 그냥 그 회사를 다니면서 그러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내 주장을 밀고 나가면 일밖에 더 생기랴. 그렇게 일을 성공시킨다 한들 뭘 그리 얻으랴, 하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뭔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나처럼 사장 눈 안에 안 든 사람은 프로젝트를 성공시켜도 부각 받지 못하겠거니 싶었다.

 

 프리를 선언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일을 시작한지 1분기 째. 귀한 발견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내 목소리다. 나란 사람을 살펴보니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은 아닌데, 목소리 내는 걸 무서워하지는 않더라. 본 거, 배운 거, 아는 것이 없어 의견이 자주/많이 생성되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긴 한데, 어쨌든 한번 생각난 건 그대로 입 밖에 옮긴다. 사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내가 단체 생활에서 이렇게 의견을 말한단 말야?! 25살 사회 생활 시작한 이후로 발생한 적 없는데??


"Speak Up!" - from 금발이 너무해


 무슨 인어 공주도 아니고  목소리 타령이냐, 하시겠지만 나로선 감개무량한 발견이다. 적어도 머리를 폼으로 들고 다니는 건 아니란 증거니까. 남들이 뭔가를 주장하면 그게 맞나- 따라가고, 남들이 어떤 의견을 내면 또 그런가- 이러고 수긍하는 나날이 부쩍 늘었다. 생각하는 힘이 갈 수록 약해지는 거다.


 이미 말라 비틀어진 생각하는 힘을 쥐어 짜 일에 쓰려니 골이 아프다. 게다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이게 맞을까?' '이건 괜찮을까?' '저건 어떤 소재가 어울릴까? 색은? 방법은? 설치는?' 등등 뇌에서 시뮬레이션을 생생하게 돌려야 하는 일이라 사람들과 회의 한번만 하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빠진다. 제안서 쓸 때는 폭식 없으면 뇌가  돌아갈 정도다.


매일 밤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려 애쓴다. 왜냐면 이 일은 내가 해내야하니까. 그것도 잘 해내야 하니까. 또, 잘 하고 싶은 일이니까. 이쯤되니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소극적일 수가 없다. 나름 머리 굴린  티 내려는 거다. 나도 이거 생각해봤는데! 이거 상상해봤는데! 이거 찾아봤는데! 하며. 나는 지금 이런 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다. 일 년 전에는 상상 못했다, 내가 의견을 낸다는 모습 자체를.


 이번에 극적으로 만난 내 목소리는 나름 까탈스러운 친구라서 본인이 뇌에서 충분한 근거를 받지 않으면 쉽게 나오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머리를 2번은 굴려보고 나갈지 말지 결정한다.



 그런  목소리를,  귀한 아이를 나는 고집스럽지 않게 존중할 참이다. 설사 사람들이  틀린 말이라고 할지라도, 비웃거나 무시하더라도 나는 믿어줄거다.  목소리가 이야기하는  뭔지,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제야 비로소  일에 있어서 나만의 가치관이 쌓이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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