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동료 그 경계선.
나는 결혼을 포기한 삼포세대지만, 요새 결혼한 사람들의 기분을 알 것만도 같다.
남편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라며. 내가 요새 동료들한테 느끼는 기분이 그러하다.
좋은데 참 밉다. 미운데 참 좋다.
모순적인데 이 말만큼 정확히 내 기분을 표현하는 말이 없다.
날 챙겨주는 것도 동료들이고, 날 빡치게 하는 것도 동료들이다.
먼 타국으로, 그것도 가장 바쁜 행사 시기에 며칠이나 해외에 가는 나를 이해해주는 동료와, 잘 갔다오라며 자신의 드레스와 구두를 빌려주는 동료, 그리고 가서는 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동료도 모두 나와 함께 어깨를 맞닿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짜증이 나다 못해 화까지 나게 만드는 사람도 동료다. 최근 내 일상의 등장 인물은 동료들과 엄마가 유일하다. 자는 엄마한테 간신히 생존신고하며 사는 상황이라 엄마는 내 감정 기복에 관여할 틈이 없다. 다시 말하면, 내 감정 대부분은 동료들이 좌지우지한다.
얼마 전에는 정말 화가 났다. 나를 화나게 만든 그 동료는, 어느 시점부터 술타령을 작작한다. 그 사람의 태도와 말을 곱씹다 보니 나중엔 기분이 비참을 넘어 참담해졌다. 저 사람은 딱 저 정도의 가벼움으로 이 조직을 대하는구나. 나는 지금 살아 남으려고 아등바등인데.
그 분이 말하는 '술 마시며 친해진다'는 논리는 사실,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왜 굳이 술을 마셔야만 친해진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우리가 친해지는 과정은 술이 아니라 일이여야 할텐데? 무엇보다 며칠 전 술 마시자고 한 타이밍은 최악이었다. 이번주 토요일에 우리가 큰 행사가 있는데 아직 그 준비가 반도 안 된 상태거든.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술자리를 제안하는 그 모습이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
물론, 나는 애초에 직장 동료와는 어지간하면 밥도 먹지 않는다. 피곤하니까. 후배에게는 내가 사더라도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그들도 나처럼 선배가 밥 사주는 게 싫을 테니.
GIVE & TAKE 자체가 싫다.
나는 언제 Give가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앞이 캄캄한 나부랭이이기도 하고, 내가 가진 자원이라곤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해서 Take를 할 때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워서 계산적이다. 이 사람에게 얻어먹었을 때 내 마음의 부담감이 크지는 않는가? 이 사람과 밥 먹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는가? 왜 이런 생각까지 하냐고?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드라니깐? 뭐 하나는 마음에 남게 되어 있어. 그게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든, 상대방이 나한테 갖는 아쉬움이든. 뭐든 간에.
아무튼 다시 요점으로 돌아오자면, 현재 상황은 이렇다. GIVE도 TAKE도 싫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왠 옛날 마인드 술 자리 주장러가 일 안하고 술 마시자고 주구장창 이야기하는 중이다. 정확히는 그 분이 우리 팀에게. 그 분이 동료가 아니라 아는 사회 선배님 혹은 좋은 선생님 정도였다면 그 제안이 반가웠겠지만 (아니다, 안 반가웠을지도?) 지금은 전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일로 내 생계가 유지되지 않고 있거든. 당장 밥 굶게 생겼는데 술은 무슨 술이야?
알 수가 없다. 한 명의 인물을 두고서도 좋았다 싫었다를 손바닥 뒤집듯이 반복하고, 이 사람이 좋았다가도 말 한 마디에 빡쳐서 부르르 떨고, 어떨 때는 별거 아닌 한 마디에 감동받아 눈물 콧물 줄줄 흘리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술자리 주장러도, 사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가장 먼저 챙겨서 연락해주신 고마운 분이다. 다만 지금 빡쳐있을 뿐. 요새 그래서 내 스스로도 나의 본성이 무엇인가 돌아보고 있다. 이 정도면 지킬 앤 하이드급인데?
어떨 땐 가족보다 더 가깝고, 어떨 땐 지나가는 남보다 못하다. 비혼주의 처자가 이런 말 하면 우습게 들리겠지만, 정말 남편같다. 몇 번 싸우고 나면 이 조직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을까?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게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일만하고 싶은데 요새는 이런 생각까지 하고 산다. 안 그래도 일 많아 죽겠는데 진짜 머리 복잡하다.
아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