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한때 퇴근 후 40분 거리의 버스정류장까지 매일 걸어 다녔다. 코로나로 체육관 문이 닫히고, 매주 세 번 이상 즐기던 배드민턴도 중단되면서 몸은 무거워지고 마음은 답답했다. 그때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야외 운동뿐이었다. 주말만 갈 수 있는 등산보다, 어차피 퇴근길이니 그냥 걸어가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걷기였다.
걸어가는 길이나 버스나 차로 가는 길이나 다를 바 없지만,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은 전혀 달랐다. 그렇게 걸어가는 퇴근길은 J에게 '슬로우 라이프'를 선물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모여 있는지, 다리 위를 달리는 차가 얼마나 많은지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알 수 있었다. 강물의 맑기와 유속, 물고기를 사냥하는 새들, 그리고 서쪽 하늘에 물드는 노을까지—그 모든 것이 매일의 풍경이자 작은 위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J의 관심은 다른 취미로 옮겨갔고, 그렇게 익숙했던 강변의 풍경도 차츰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러던 지난 금요일, 강변 둔치에서 강변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제가 열리는 고수부지까지 가는 길은 예전 J가 매일 걷던 그 길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걷는 강변, 마음은 괜히 설레고 발걸음은 빨라졌다. 그리고 마주했다. 한때 매일 보던 해질녘의 노을을. 같은 계절, 같은 길, 같은 시간인데도 그때 느꼈던 감동과 지금의 감동이 달랐다. 그때와 지금의 J가 달라져 있었다. 나이는 더 들었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으며, 열정도 옅어졌다.
예전에는 노을을 마주하고 걸으면서 집에 도착하면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앉고 싶고, 눕고 싶고, 잠들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킨 걸까? 정말 나이가 들어서일까?' J는 자문했다.
그때 떠오른 건 엄마의 목소리였다.
"○○야, 50살이 되니까 겁이 나더라. 40대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생겨도 감당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누가 아플까 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난다."
늘 기둥처럼 든든하던 엄마가 두려움을 말했을 때, J는 낯선 얼굴을 마주한 듯했다. 그리고 이제는 J가 그 나이에 서 있었다.
예전에는 바쁘게만 살아도 많은 일이 생겨 굳이 뭘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직접 찾아 나서지 않으면 하루를 통째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찾는 사람도, 찾을 사람도 없으니 그저 방 안에 머물 수도 있는 것이다.
지는 해를 보며 J는 깨달았다. 주변은 변하지 않아도, 마음가짐 하나로 모든 게 달라진다는 것을. 사실 거창한 답을 찾은 건 아니다. 그저 쉬고 싶어 하는 지금의 마음을 인정하기로 했을 뿐이다. ‘예전만큼 활기차지 않아도,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그런 나도 괜찮다’고 말이다. 내일부터 다시 강변을 걸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집에 돌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