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렇게까지 또라이일 수 있다고?
어느 직종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직장인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일하는 사람, 이간질하는 사람, 아무 생각 없는 사람.
이 중에 사람을 진짜 미치게 만드는 건 바로 이간질하는 사람 아닐까.
내가 다녔던 직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실버인력뱅크는 유사한 사업을 하는 시니어클럽과 거의 같은 기관처럼 움직였는데 사업을 하다 고민이 있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시니어클럽 과장님과 상의해서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실버인력뱅크는 소규모 기관으로 과장직위가 없었고 비상근 센터장님과 팀장, 직원이 전부였다.) 직원들도 너무 좋았고,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근무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녔던 모든 직장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될 정도로 상사, 동료 할 것 없이 잘 아우러져 일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짜 가족이 아니었기에 각자 자기만의 목표를 따라 떠나는 사람이 생기고, 또 다른 직원이 입사하면서 나는 관계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시니어클럽 직원이 거의 한 번에 다 교체되고 새로운 직원들이 입사했던 적이 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업무를 하면 되고, 예전처럼 좋은 동료로 잘 지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경력직 사회복지사로 입사한 A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당시 진짜 신규중의 신규, 쌩 신규 사회복지사였던 나는 무엇 하나라도 더 배우러 노력했고, 이 모습을 예쁘게 봐주시는 선배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
어느 날, 기관에 차량이 모자랐던 터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공모하는 차량지원사업 프로포절을 제출할 때였다. 봉사단 파견을 위해서는 차량이 꼭 필요하고, 어르신의 특성상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울 경우가 많아 차량이 꼭 필요하다는 취지로 프로포절을 작성했고, 제출 전 과장님께 마지막 점검 결재를 받았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수정사항을 메모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A가 내 자리로 와서 살짝 물었다.
'과장님이랑 무슨 사이야?
'네?'
'아니~ 과장님 결재만 받으러 가면 너무 좋아하시잖아~ 예뻐서 그런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말이냐 되묻는 내게 A는 말했다.
'아니~ 둘이 너무 사이가 좋아서~ 나란히 앉아 일하면서 웃을 일이 뭐가 있다고 하하 호호 웃으면서 저렇게 매번 화기애애하길래 무슨 특별한 사인가 했지~'
누가 봐도 무례한 질문이었다. 더구나 과장님은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있었는데..
젊은 미혼 직원들의 미묘한 기류를 알아채고 '잘됐으면 좋겠다' 으쌰으쌰 해주는 그런 말과는 차원이 다른 무례함이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A의 무례함과 이중성을.
너무 어렸던 나는 그냥 당황한 채로 그게 무슨 말이냐며 그냥 웃어넘겼는데 이 날이 시작이었다.
그녀가 나를 친절의 가면을 쓰고 경계하고 시작한 날이.
그날 이후 A는 내 자리로 자주 찾아와 안부를 물었고, 같이 차를 마시고, 저녁도, 술도 함께 하면서 친해졌다. 싹싹하고 붙임성 좋게 다가오는 그녀가 언니처럼 편했고, 내가 몰랐던 다른 복지관에서의 경험도 들려주면서 선배미를 뿜뿜 자랑했다. 무슨 일이든 척척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일처리도 시원시원했다.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감이 있었다. 회식자리에서도 노래방에서도 빼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시니어클럽의 에이스로 자리 잡아갔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밟힌 한 사람.
바로 나였다.
왜 그랬을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곳에서 유난히 예쁨 받는 직원이었다. 당시 국장님께서는 엄마처럼 날 예뻐해 주셨고, 과장님들, 팀장님들까지 나의 도전을 항상 응원하고 지지해 주셨다. 돌이켜보면 막내가 똘망똘망 일해보겠다고 하는 노력들이 예뻤을 것이고, 운이 좋게도 성과도 좋아 그랬으리라.
나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 그녀의 시기질투 대상이 되었다.
'왜 국장님이 널 그렇게 예뻐할까?'로 시작된 질문은 '국장님은 너 좋아하잖아~'로 끝났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랬다.
'그거 국장님이 걔 좋아해서 해준 거잖아~'
'우리가 백번 일해도 걔가 과장님한테 가서 말 한번 하는 게 더 먹혀~'
A의 이런 말은 나의 노력을 폄하하고, 나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행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이간질하고 편가르는 전형적인 수법.
나에게는 친한 척, 세상 인자한 척 다가와서는 디로는 날 저렇게 깎아내리고 있었다.
친한 동료, 선배, 언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렇게 뒷말을 하다니...
배신감과 충격에 자연스럽게 그녀와는 거리를 두게 되었고 그러던 중 조직개편으로 그녀와 나는 나란히 각자의 팀을 책임지는 팀장이 되었다. 그 후 그녀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험담과 우리 팀 vs 너희 팀 편 가르기는 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매주 월요일 청소하는 날.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우리 팀 직원에게 A가 말했다.
'어머~ 이거 힘든 거야, 내가 할게~ 줘줘줘줘, 저기 컵만 좀 씻어줘~ 고마워용~'
빼앗다시피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청소하는 그녀.
나중에 와서 나에게 말했다.
'꿈팀장, 그 팀 직원들은 다 같이 청소하는데 제일 어린 직원들이 제일 쉬운 것만 하려고 하고,,,, 빗자루 나한테 떠넘기고 가더라?'
우리 팀이 추진한 시책사업이 보건복지부 복지해정상을 수상한 날도 그랬다.
노인일자리사업을 수행하는 수행기관과 시청 담당자들이 모두 모여 각 기관이 내년에 어떤 사업을 추진할지 회의하는 날이었다. 중복 사업을 조율하고 효과적으로 사업을 분배해 보자고 모인 날.
당시 고익형 교통지도일자리를 모든 수행기관에서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를 한 기관으로 집중하고 다른 기관은 좀 더 창의적인 시장형 모델을 개발해 보기로 했다. (공익형은 자원봉사와 유사하나 일자리 급여를 받는 사업, 시장형은 신규 시장을 개발해서 수익이 난 만큼 급여를 받는 사업이다.) 아무래도 공익형 사업이고 노인 자원봉사를 담당하는 우리 기관이 총괄 수행기관이 되는 게 좋겠다고 모두 합의했고 이 사업 모델로 그 해 보건복지부 복지행정상을 수상 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꿈팀장,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결국 상 탔네? 거기는 자원봉사 주력 아니었어? 굳이 일자리까지 뺏어가더니... 암튼 축하해'
직원 상조회 생일파티가 있던 날.
매월 생일자들을 위해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선물을 나누고 간단히 간식을 먹는 상조회 행사가 있었다. 나와 A는 상조회 임원이라 함께 케이크와 간식을 사러 나갔는데 A가 말했다.
'상조회 행사 한번 하면 진짜 하루가 다 간다니까...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짜증 나게... 그렇지?'
'그러게요... 살게 많긴 하네요.'
생일 파티를 끝내고 당시 상조회 회장을 맡고 있던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땡팀장, 파티 준비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그럼 다음부턴 내가 할게.'
어느새 나는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고, 일을 하기 싫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찡찡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 팀은 성과를 내고 싶어 다른 직원과 다른 팀의 일을 가로채는 얌체팀이 되어 버렸고, 우리 직원들은 이름이 드러나는 상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담판을 지어야겠다 생각했던 즈음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알고 있었는데, 그 실체는 의외의 곳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바로 사회복무요원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요동치는 그녀의 감정기복에 그 팀 안에서도 분열이 생겼고, 그 분열을 이해관계없이 가장 객관적으로 느낀 게 바로 사회복무요원이었던 것이다.
'팀장님, 저도 팀장님 팀에서 근무하고 싶어요...'
매일 A의 기분에 따라 살어름판 같은 팀의 분위기와 팀 내에서 뿐만 아니라 각 팀 간까지 가리지 않는 이간질, 편 가르기로 이미 직원들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A의 팀과는 반대로 우리 팀 분위기는 오히려 우리끼리 도와주고 의지하며 너무 훈훈하고 화기애애하니, 그 사회복무요원은 같은 사무실이지만 우리 팀이 너무 부럽다고 할 정도였다.
한때는 나에게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진짜 A는 그냥 또라이 였던 걸까?
내가 잘못한 건 도대체 뭘까?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만취해서 다른 팀장님을 붙잡고 엉엉 울기도 했고,
내가 이 사무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버리면, 그녀는 죄책감이 들까?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라는 생각도 했다.
끝내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나를 향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이간질은 나의 퇴사로 막을 내렸다.
물론 A가 나의 퇴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1% 정도는 기여했음을 인정한다. 그녀보다 먼저 퇴사하는 것이 왠지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또라이에 대처하는 법은 나도 같이 미친년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못할 거라면 그냥 피하는 수밖에.
그녀 때문에 스스로 미친년이 되기엔 내가 너무 아까웠고, 저급한 리그로 스스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 상황을 피했지만 오히려 잘 한 선택이었다. 상생할 수 없다면 깨끗이 털고 나오는 수밖에.
알고 보니 그녀는 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아직 순수했던 내가 초고난이도의 이간질 상대를 만났던 것이다.
아직도 그녀가 왜 내게 원인 모를 시기와 질투를 느꼈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있고, 이제는 웬만한 또라이가 등장해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나도, 미친년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