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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Aug 16. 2022

월평이면 족하지게

8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 다 해

‘방이라면 왕 할망넨 있을 텐데.’

연구원이 가고 삼자 할망은 왕 할망네 슬쩍 들렀습니다. 왕 할망은 솔이와 마당에서 게이트볼을 연습 중이었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야? 그렇게 팩 가버리더니?”

“성님, 미안해요. 내가 생각해 보니까 주장은 성님이 하는 게 맞더라고.”

“갑자기 왜 바뀌었어? 뭐 부탁할 거라도 있어?”

“성님은 귀신이야. 게이트볼은 내가 좀 더 치고 나서 주장을 물려주시고. 방 하나만 좀 쓰게 해 주요.”

“갑자기 웬 방을?”

 삼자 할망은 왕 할망에게 딸 같은 연구원이 살 집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왕 할망은 시원하게 한 번에 대답했습니다.

“딸이 하나 생기겠구먼,”

“성님, 우리 게이트볼 시합 꼭 이기자고요!” 

 마음을 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주는 깡 언니가 오늘따라 참 고마웠습니다. 주장을 하겠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웃음으로 넘겨주니 더 미안했습니다. 역시 깡 언니는 맏언니 같았습니다.  

삼자 할망은 기분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시합에서 월평팀이 이겼습니다. 달콤한 꿈속에서 삼자 할망은 꿈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며칠 후, 삼자 할망은 흰밥에 감태를 돌돌 묻혀서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노란 계란말이도 예쁘게 잘랐습니다. 차롱에 이것저것 담으니 소풍 도시락이 되었습니다. 오늘만큼은 어릴 때로 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설레었습니다. 

 아침부터 해가 푹푹 쪘습니다. 옷 사이로 땀이 흐르지만 꿉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물놀이 하자.”

며칠 전 깡 언니는 100세가 되기 전에 진끗내에 발이나 담그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얘기를 나누다가 결국 날을 잡아 물놀이를 하자고 정했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깡 언니는 물놀이 때 입을 옷을 고르다 그냥 편한 반바지 차림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반바지도 오랜만에 입어 보는 옷이었습니다. 어릴 때 빤스 바람으로 참 많이도 놀았습니다. 9살에 월평 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깡 언니는 진끗내에서 어릴 때 멱을 감고, 맨손으로 척척 장어를 잡고 놀았습니다. 

 화숙 할망은 아들이 새로 사준 수영복을 입어 보았습니다. 가장 큰 사이즈라더니 입는 동안에 우두둑 수영복이 찢어졌습니다. 화숙 할망은 헛웃음을 지으며 큼지막한 티셔츠를 입고 길을 나섰습니다.

 진끗내에 할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수영복도 뭣도 갖춰 입지 않았지만 그저 즐겁고 시원한 수다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삼자야, 니 물질한 얘기나 좀 해줘. 오랜만에 듣자 좀.”

“그보다 성님이 성담 쌓고 보초 섰던 얘기나 좀 듣자요.”

옥춘은 다들 수다를 미루는 동안에 게이트 볼 얘기를 냅다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게이트 볼이 우리네 인생이랑 똑같다니까요. 힘을 적당히 빼고 딱 치면 그냥 데구루루 굴러가거든요.”

옥춘이 게이트볼 스틱을 든 것처럼 물에 대고 게이트 볼을 휙 쳤습니다.

“앗, 차가워.”

옥춘이 날린 물줄기는 깡언니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리고 삼자 할망의 잠자리 안경을 톡 쳤습니다. 그 바람에 삼자 할망의 잠자리 안경이 휙 날아가 물에 둥둥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에구머니나!”

“이걸 어째. 내 안경!”

삼자 할망은 오랜만에 물속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 지냈던 바다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허리 때문에 물질을 관둬야 했을 때 삼자 할망은 뜨거운 눈물을 삼켰습니다. 딱 거기까지 바다가 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삼자 할망은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바다의 품에 오랜만에 안긴 삼자 할망은 잠자리 안경을 깡 언니 쪽으로 휙 던지고 한 마리의 인어처럼 헤엄치다 할망들에게 소리쳤습니다. 

“같이 놀아요!”

“물 얕으나? 다 같이 들어가 볼까.”

할망들은 깡 언니가 발을 제대로 담그자 따라서 물에 들어갔습니다. 뜨거운 해에 등이 따시던 차에 시원한 물에 몸을 비비적대고 기분 좋게 놀았습니다. 한참을 놀고 할망들은 불턱에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습니다. 

“옛날엔 한 번에 붙었는데 지금은 잘 안되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깡 언니가 피운 불꽃이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망들은 젖은 옷가지를 불턱에서 말리며 수다 꽃을 피웠습니다. 삼자 할망이 준비해온 차롱을 꺼냈습니다. 노란 계란말이와 감태 주먹밥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었습니다. 밥 냄새가 퍼지자 허기가 몰려왔습니다. 병에 담아 온 쉰다리를 한잔씩 돌리고, 기분 좋게 물놀이 소풍을 즐겼습니다.

“인생 별 거 있나. 해보고 싶을 때 하는 거지.”     

옥춘은 깡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게이트 볼 장을 떠올렸습니다.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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