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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Aug 23. 2022

월평이면 족하지게

11 수국이 담뿍담뿍 핀 어느 날에

잘그락거리는 자갈길을 따라 아름다운 빛깔이 가득한 수국 길이 펼쳐졌습니다.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넓은 평상이 보입니다. 평상 위에 이웃들이 준비한 축하상이 펼쳐졌습니다. 월평을 대표할 손맛의 향연이었습니다. 보기에도 예쁘고 화려한 음식이 가득했습니다. 왕 할망은 남아있던 기운을 다 쓴 것처럼 허기가 몰려왔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니 배가 더 출렁거렸습니다. 

 솔이는 무엇을 먼저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다 먼저 황금향 착즙주스를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상콤하고 달콤한 과육 덩어리가 부드러운 물이 되어 몸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강정한테 주도권을 뺏기나 보다 싶었거든요!”

“쫄깃쫄깃하다가 골폴에 딱딱 맞는데 어찌나 통쾌했던지요!”

“하하, 끝을 알 수 없는 게 경기의 묘미죠.”

월평 주민은 게이트 볼 경기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오늘따라 쉰다리는 목을 타고 개운하게 흘러갔습니다. 

 수국 밭을 지나 작은 이삿짐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모두 고개를 쭉 빼고 새로 오는 사람이 궁금해 쳐다보았습니다. 차가 멈춘 곳은 왕 할망의 집 앞이었습니다. 차 문을 열고 쭈뼛쭈뼛 누가 나오더니 수국 밭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바로 월평 마을에 부임 온 연구원이었습니다. 동그란 눈에 미소를 가득 담고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연구원을 알아본 삼자 할망이 가장 반겼습니다. 연구원은 쑥스러운지 주변을 슬깃슬깃 보았습니다. 그러다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도 월평에서 두런두런 섞여 살아도 되죠?”

 삼자 할망은 자기의 부탁을 들어준 왕 할망을 보고 씽긋 웃었습니다. 왕 할망이 늘 씩씩해도 혼자 지내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여러 모로 너무나 잘된 일 같았습니다. 솔이가 있는 동안 실컷 웃고, 하루가 바빠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행복했던 왕 할망이었습니다. 왕 할망은 연구원에게 쫄깃한 기름떡을 주며 말했습니다. 

"이제 솔이가 떠나면 얼마나 허전할까 싶었는데. 식구가 늘어난다니 내가 좋지. 삼자 덕분이지."

삼자 할망은 왕 할망이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월평 마을의 터줏대감, 가장 오래된 노인네, 100살까지 더 넘어도 지금만큼만 제발 건강하기를 바랐습니다.  삼자 할망은 쉰다리 한 컵을 연구원에게 따라주었습니다.

“저도 이 맛에 반했거든요. 오늘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마을에 딸이 하나 들어왔네.”

“마을이 참 아기자기해요. 왕 할머니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평 주민들은 연구원이 함께 살게 된 것을 환영하고 반겼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몇 없는데 잘 되었네. 잘 되었어."

삼자 할망은 쉰다리를 쭉 들이켰습니다. 오늘따라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쉰다리의 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딸 같은 연구원을 보고 싶으면 왕 할머니네 가면 된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역시 좋은 사람은 가까이서 지내면 서로에게 힘이 되는 법이죠. 월평 할머니들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사는 힘이기도 하고요. 

“우리 노래교실서 배운 거 한 자락씩 불러볼까?”

"아, 마이크! "

한라봉 주스병을 손에 들고 옥춘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흥이 오른 월평 주민들의 노랫가락이 알록달록한 수국 밭을 잔잔히 흔들었습니다. 월평 마을의 웃음꽃이 해가 지도록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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