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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Jul 01. 2024

기계가 이상해

2. 3초의 설렘

"자, 열어봐!"

남편이 건넨 상자를 받아 들고 잠시 망설였다. 무게가 꽤 나가는 걸 보니 옷은 아닌 것 같았다.

"강아지 아니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사실 난 강아지를 너무 사랑하지만 15년 키우고 하늘나라로 보낸 기억 때문에 아직 못 키우고 있었다.

남편이 푹 웃었다.

"그것보다 더 좋을 걸?"

내 머릿속을 수많은 물건들이 훑고 지나갔다.

호기심이 폭발할 것 같았다.

"힌트 좀 줘봐."

"음… 당신을 더 아름답게 해 줄 거야. “

난 김이 팍샜다. 링클프리 어쩌고 크림인가 보다 싶었다. 차라리 옷이 날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잘 관리해서 입으면 사라지지 않으니까. 화장품은 쓰다가 닳으면 빈 통만 남으니 선물이 수명을 다 하는 기분이 들어서 싫었다.

"에이, 그럼 화장품이네."

"아니, 그것보다 더 대단한 거라고."

더 대단한 거? 설마 성형외과 이용권?

’ 그래 그동안 피부과도 한 번 안 가고 알뜰하게 살았더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살짝 손끝이 떨렸다.

리본을 풀고 뚜껑을 열기까지 3초. 이런 설렘이 오랜만에 쫄깃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뚜껑을 열었다..

검은색 도구의 사진이 있는 박스가 훤하게 드러났다. 나는 자동적으로 남편의 바지춤을 쓱 보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남편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자꾸 이상한 생각 하지 말라며 이것은 피부미용 기기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이게 아주 핫하대. 요즘. 연예인들도 많이 쓴대."

"와, 이거 신박한데? 모양도 맘에 들고!"

"자꾸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실실 웃음을 흘렸다.

"와 일단 맘에 들었어. 사용법은 살펴봐야겠지만."

남편은 뿌듯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항상 피부 좋아지고 싶다고 했잖아. 이거 쓰면 10년은 젊어 보일 거래."

그 말에 괜히 설레었다. 아니라고 해도 믿고 싶었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글쎄.. 공부해 봐. 영상도 많을 거야. 하다가 모르겠음 나한테 물어봐.

"근데 이거 그럼 같이 하자! 어때?"

"에이, 아냐 난 아직 누나보다 2살이나 젊으니까 먼저 많이 쓰셔요."

나는 사용설명서를 펼쳤다. 설명서가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었다.

나는 냅다 물건을 꺼내어 충전기를 연결했다. 부드러운 진동음과 함께 LED 불빛이 켜지며 충전이 시작되었다.

"여보, 이거 내 두뇌 관리용 아냐?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10년은 젊어질 것 같은데?"

남편은 내가 조잘조잘 말하는 내내 행복한 표정이었다. 선물을 준비한 자신의 넘치는 센스에 계속 감탄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에겐 피부 미용기기가 생겼다. 설렘이 가득한 모험이 시작됐다. 은은하게 충전되는 빛을 바라보았다. 그 부드러운 푸른빛은 마치 어둠 속에서 나를 부르는 작은 등대 같았다.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불빛은 내 지친 마음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오랫동안 잊고 있던 희망의 씨앗을 던지고 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작은 기계가, 시간의 흐름에 무뎌진 나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 생소한 검정 도구를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 나랑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보자.'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올해 기념일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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