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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Nov 05. 2024

선녀 할아버지

선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이름처럼 선녀같이 떠나셨다. 89세. 수를 다하고 가신 것이 주변 사람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완전한 임종을 맞으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두 분이 사셨다. 그렇지만 가까운 곳에 자녀들이 있어 날마다 드나들며 두 분을 보살피고 모셨다. 자녀들의 효심은 자자했다. 특별히 큰 아들은 대학 때 서울로 올라가 줄곧 서울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평생 몸담았던 공직에서 고위직으로 은퇴하면서 낙향하였다. 그러고는 부모님 모시기를 전담하였다. 주변에 누나, 여동생이 있었지만 그동안 고생한 형제들을 대신하여 본인이 매일 들러 부모님을 보살피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선녀 할아버지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이루셨다. 2남 2녀의 자녀들은 모두 사회에 내놓을 수 있게 자라주어 할아버지의 자랑이 되었다. 손자 손녀들도 쑥쑥 자라주었다. 공직 생활로 시작하였던 할아버지는 일찍 공직에서 물러나 경제 활동에 전념하셨다. 남보다 빠르게 시대의 흐름을 보는 눈과 타고난 경제 감각과 성실함으로 할아버지는 큰 부를 일구고 가정을 든든히 세웠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살았던 시대의 남자들과는 다르게 가정적이셨다. 예쁘고 소녀같이 명랑했지만 평생을 시어머니와 시형제들과 함께 살면서 조심성이 몸에 밴 부인을 헌신적으로 사랑하였다. 부인에게 손에 물 하나 대지 않도록 하면서 애지중지 아꼈다. 철마다 때마다 자녀들과 함께 해수욕장이며 여행하며 우애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경제적 넉넉함과 자녀들의 효심도 두 분의 노쇠를 막지 못했다. 함께 잘 살아가던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기억을 잠깐잠깐 놓아버리고 같은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묻고 또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녀들에게도 할머니의 치매 증상을 잘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부인의 품위를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날마다 들르기는 했지만 계속 함께 있지 않은 자녀들은 어머니의 증상을 자세하게 알지 못했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였다.      


도우미를 집에 들이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곁을 종일 지켰다. 젊은 시절에 집안을 위해 헌신한 할머니를 요양 시설로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할머니는 당신의 나이에서 놓여나 가장 즐거웠던 행복했던 시절로 들어간 것 같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처럼 모든 일이 즐겁고 궁금했다. 끊임없이 질문을 하였고 호기심을 가졌다. 당신의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할머니는 낮에는 주간보호시설에 가서 재미있게 보내고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셨다. 할머니는 유치원생이 엄마를 찾는 것처럼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방을 찾아다녀서 자기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저녁에도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매일매일이 그렇게 흘러갔고 나름의 질서와 평온을 유지하였다.   

   

돌아가시던 날 새벽, 할아버지는 화장실 문을 열다 미끄러져 쓰러지셨다. 그러고는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새벽에 교회를 다녀오던 며느리가 집에 들렀다 할아버지가 쓰러져 계신 것을 발견하여 침대로 옮겼다. 할아버지는 정신은 온전하였지만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급하게 달려온 큰 아들이 아버지를 주무르고 주스를 마시게 하고 물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고는 자리에 누우셨다. 그러기를 몇 시간, 뒤늦게 달려온 큰 딸이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아무 걱정 마시라고, 어머니 잘 모시겠다고, 형제간에 우애하겠다고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알아들은 듯 엷은 미소를 보이면서 눈을 감으셨다. 한 나절이 못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집에서 돌아가신지라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들이 와서 검사하였다. 여러 가지를 묻고 할아버지를 살피던 나이 지긋한 경찰이 말하였다. 근래 들어 이렇게 깨끗하고 복 있게 돌아가신 분은 처음 본다고. 뒤이어 응급차가 도착했다. 아직 따뜻한 할아버지의 몸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려 하는 젊은 응급구조사에게 나이 지긋한 경찰이 말하였다. 이렇게 곱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을 하려고 하냐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잘 보내 드리자고 말하였다.

      

경황없는 중에 장례를 치렀다. 코로나 와중이었고 급작스런 장례였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자식들은 할머니 걱정을 하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할머니에게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장례 절차를 다 마치고 할아버지는 당신이 공들여 조성한 가족 묘지에 묻히셨다.  몇 년을 공들여 가꾼 묘지 주변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꽃잎이 흐드러지게 날렸고 봄은 무르익어 날씨는 따뜻하였다.

      

할아버지를 산에 모시고 영정 사진을 품에 안고 울며 웃으며 온 가족이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들은 할머니가 어떻게 반응하실 것인가가 모두의 걱정이었다. 탁자를 옮겨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모셨다. 자식들이 어머니 앞에 앉고 큰 아들이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장례를 치르고 산에 모시고 오는 길이라고. 어머니께는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였다. 식구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사람이 많은 것에 즐거워하던 할머니가 일순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그랬냐고. 그렇다면 나도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해야지 하시면서 큰 딸에게 차 한잔을 아버지 앞에 올리라고 하였다.      


할아버지의 영정 앞에 차 한잔이 놓이자 할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할아버지 사진 앞에 큰 절을 올리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먼저 잘 가시라고. 나는 좀 더 얘들 옆에 남아서 돌보다 뒤따라 가겠다고 이야기하시고는 조용히 물러나 소파에 다소곳이 앉으셨다. 주변에서 숨죽이며 할머니의 기품 있는 작별 의식을 보고 있던 모든 가족들이 전부 돌아앉아 눈물을 찍어 내었다.   

   

아름다운 할아버지의 임종이었고, 할머니의 애틋한 하직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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