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은 결국 좋은 눈을 가진 사람에게 간다. 좋은 눈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야 가질 수 있게 된다. 사들이지 말아야 할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어쩌면 살 만한 물건을 알아보는 눈보다 더 좋은 눈인지도 모른다.
출판 편집자이자, 개인적인 취미로서 헌책 수집에 열정을 바쳐온 지은이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산문집 『아무튼, 헌책』에서.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7.16 28면
결국 모든 것이 내 수준이었다는 것을 절감할 때가 있다.
모든 선택,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
만족하거나 후회하거나
간직하고 싶거나 되물리고 싶거나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나의 안목이었고
내 수준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다.
샤프 하나를 고를 때,
옷 한 벌을 고를 때,
책 한 권을 고를 때,
사람을 판단하거나 선택할 때,
결국은 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의 직관을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무리 변하려도 노력해도
아무리 관점을 바꾸어 보려고 애써도
돌아보면 그 언저리에서 맴돌 뿐
경계를 확장시키지 못한 나를 본다.
한계가 답답하여 목을 내밀어 둘러보다가도
다시금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 포기하였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좋은 눈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야 가질 수 있게 된다.' 고 저자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안목을 높이고 싶었지만
방향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은
더 좋은 것, 더 높은 것, 더 고상한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부족 때문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현재의 안일을
놓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사들이지 말아야 할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어쩌면 살 만한 물건을 알아보는 눈보다 더 좋은 눈인지도 모른다.'고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더 높고 더 좋은 것을 추구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할 때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지혜는 언제나 나에게 올까.
좋은 눈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늦지 않게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