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마른 호박씨를
깨물다가
문득
호박의 생애를
통째로 먹는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햇볕 따스한 봄날에
이 호박씨를
땅에 심으면
연두빛 싹이 돋을 것이고
쑥쑥 자라날 것이고
나팔같이 노란 호박꽃이 필 것이고
초록빛 연한 호박이 맺혀
비를 맞고 바람을 맞으며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노랗게 노랗게 잘 익어 갈 터인데...
호박의 일생을
한 입에 털어 먹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생각하였다
내게 오는 자연
내가 만나는 사람
모두
그의 일생이 같이 올 것인데
나와 만났던
그들의 시간은
나로 인하여
꽃을 피웠을까
꺾여 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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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못지않게 매섭다. 그래도 봄이어서 씨 뿌리기를 생각한다.
마침 돌아다니는 호박씨를 집어서 무심코 깨물다가 아뿔싸! 얘도 생명인데 싶었다.
깡깡 말랐다고, 잎이 보이지 않고,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명도 없다고 착각한 내가 한심하였다.
살면서 생각 없이 남의 생명, 남의 목숨을 가볍게 집어삼킨 적은 없는가.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가 되는 가능성을 잘라버린 적은 없는가.
좀 더 신중하게 좀 더 살피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봄,
매서운 추위를 뚫고 오는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