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칠십이 넘어갔다. 피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노년이다.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젊음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년이 길어지는 것이었다. 이제는 나의 노년을 잘 보내는 것, 잘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다. 추하지 않도록, 신세 지지 않도록 나를 관리하고 지키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노년이 되어갈수록 독서의 경향도 늙음이나 노년, 죽음을 주제로 편중되어 가는 것을 본다.
60대를 들어서면서는 내가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감하기 위해서, 마치 금방이라도 세상을 떠날 것처럼 노년과 죽음에 집착하고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하여 찾아다녔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그것을 이론화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을 보고 강의를 듣고 하면서 외부적인 도움으로 결론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 때에는 나의 모든 관심사를 노년과 죽음에 집중하여 독서도 노년과 죽음에 관한 것을 많이 찾아 읽었다. 다이애너 애실의 『어떻게 늙을까』도 그 무렵에 찾아 읽은 책이었다.
『어떻게 늙을까』의 표지에는 ’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해 주는 말이다. 다이애너 애실을 전설적인 편집자라고 하는 것은 1993년 75세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안드레도이치 출판사에서 50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하며 필립 로스, 노먼 메일러, 잭 캐루악, 진 리스, 시몬 드 보부아르, V. S. 나이폴, 존 업다이크, 마거릿 애트우드 등 세계적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다듬어서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애실은『어떻게 늙을까』를 쓰게 된 동기를 젊음에 관한 책은 많아도 노년에 관한 책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여 90세에 쓴 노년과 삶에 관한 회고록이다. 75세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90세까지 운전을 하고 책을 쓰면서 건강한 노년을 보낸 애실은 2019년 101세로 세상을 떠났다. 70대까지 일하고, 90대까지 독서하고 책을 쓰고, 101세에 세상을 떠난 애실의 노년이 70대에 접어드는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이고 따라 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늙을까』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든아홉이 된 애실은 자신의 침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공원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린다. 퍼그 한 마리를 키우고 싶었는데 이제는 너무 늙어 키울 수 없어서다. 산책도 못 시켜줄 거면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 안 될 일이니까. 또 애실은 몇 년 전 도미니카 공화국의 나무고사리 숲을 보고 반하여 종묘회사에 나무고사리 묘목 하나를 주문한다. 그런데 집에 배달되어 온 것을 보니 이파리 4개가 달린 조그만 묘목이었다. 애실은 그 작은 나무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무고사리묘목이 자라 정원을 덮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해서는 안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늙는 것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애실은 죽음에 대해 두 가지의 다른 태도를 보여준 사람들을 보여준다. 하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늙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분노와 절망에 휩싸여 비참한 기분으로 살아간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거부하고 저항한 사람이다. 애실은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지만 둘 다 죽음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노년에 들어선 지 한참을 지난 애실은 불가피한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인정한다. ’ 종교‘에 기대지 않고, 장차 닥칠 일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죽음 앞으로 가려고 한다. 그리고 이십 년 전 자신이 70대였을 때 90대였던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지금 자신의 9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 어머니는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애실이 당신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기를 바랐다. 애실도 그런 어머니의 희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일주일의 얼마는 어머니집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면서 어머니를 돌보고 봉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애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집에서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사는 날까지 살다가 죽고 싶어 한다. 24쪽.
모든 노인들의 소망 아닐까. 젊은이들에게 핀잔 받고 주책없다는 말을 들을까 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지만 모든 노인들은 이런 노년을 꿈꾸지 않을까. 더 나아가 애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란 모름지기 젊어서는 자식을 돌보고 늙어서는 자식의 돌봄을 받는 게 자연의 이치라 생각한다. 25쪽.
우리가 가장 원하는 노년이 이런 것 아닐까. 언제부턴가 이런 것을 원한다고 하면 주책없고 욕심 많고 이기적인 늙은이라고 매도하니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룰 수는 없어도 이런 삶을 소망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애실은 노년의 소망을 당당하게 말한다. 애실의 당당함이 속 시원하다. 그렇지만 애실은 결혼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다. 자신의 소망이 아니라 일반적인 노년의 소망을 대변한 것이다.
노인들은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항상 의식한다. 그렇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애실의 어머니 역시 그러했다.
“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어머니는 이렇게 말했고, 또 당신이 죽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냉정하게 논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달리 정말로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었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너무 자주 쓰는 말이라 진부한 상투어가 돼버렸는데, 그건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죽는 과정이 무섭다’는 말이다. 죽어가는 광경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그 말이 정말 실감 난다. 내 어머니는 죽는 건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협심증이 닥치면 숨을 쉬지 못해 매우 겁을 냈다. 나도 어머니가 죽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건 겁이 났다. 33쪽.
우리들도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의 과정을 무서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노년이 되면 마지막을 어디서 보내게 될지가 가장 큰 관심사이자 걱정이 된다.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돌볼 수 없는 마지막 시간을 병원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병원으로 실려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생명을 연장받는다.
내가 느끼기에 병원의 진짜 문제점 하나는, 그곳이 간호를 더 잘하기 때문에 죽으려는 순간 다시 삶 쪽으로 끌려올 가능성이 많아 ‘시설’에 있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비참함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102쪽.
애실은 노년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애실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연애는 자주 했고 마지막에도 남자친구와 거의 가족애에 가까운 동거를 한다. 그러면서 칠십대로 접어든 이후 가장 큰 변화의 하나를 성적인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다 해도 칠십대로 접어들면서 가장 분명해진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늙어 보이지도 않고 또 그렇게 늙었다는 느낌이 안 들지 몰라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성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여러 단계를 거쳤고 매 단계가 다 행복했던 건 아니었어도 늘 내 존재에 결정적인 요소였건만. 48쪽.
애실은 ‘현재를 얼마나 잘 사느냐는 노력보다는 상당 부분 운에 달려 있다’(211쪽)고 말한다. 애실은 운 가운데서도 최고의 행운은 ‘타고난 회복력’이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과 처지에 놓였더라도 거기에서 일어서는 능력인 회복력 말이다. 그러면서 103세에 세상을 떠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예를 든다. 리스트의 제자 밑에서 공부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된 알리스는 역시 재능 있는 음악가와 결혼하지만 히틀러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로 보내지고 거기에서 남편을 잃는다. 가족과 친구 대부분을 잃은 알리스는 아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아들을 챌리스트로 키운다. 영국으로 이주한 알리스는 65세 된 아들의 죽음을 보게 된다. 모진 세월을 견디고 103세가 된 알리스는 기쁨에 찬 표정을 잃지 않는다. 알리스는 타고난 낙관적인 천성으로 매 순간마다 눈부신 회복력을 발휘한다. 알리스는 그 모든 일을 겪었으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지극히 아름답지요. 그리고 늙으면 그 사실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게 되지요. 모든 것에.” 또 그녀는 말했다. “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로지 선한 것만 봅니다.” 214쪽.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악보다는 오로지 선한 것만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