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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에세이 1
02화
자귀꽃
by
선희 마리아
Jun 20. 2024
자귀꽃이 필 때는
장마도 같이 왔다
촉촉이 젖은
새벽길을 걸어
막막한 한숨을 내뱉으며
도서관 창밖을 보면
양귀비같이
곱디고운 자귀꽃이
머리에 분홍 화관을 쓰고
비를 맞고 있었다
닭벼슬처럼
머리꼭지에 얹힌
연분홍 꽃무리는
시름없이 내리는 비에
고스란히
젖어 있고
자귀꽃이 피었는지도 모르는
젊은 청춘들은
검정 우산을 받고
자귀꽃 아래를 무심히 드나들었다
나만 홀로
비에 젖은 자귀꽃이 안타까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자귀꽃은 예쁜 꽃이다. 예쁘지 않은 꽃이 있으랴마는 자귀꽃은 특별히 예쁘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구름처럼 피어나는 자귀꽃을 보면 천상의 꽃을 보는 것 같은 감탄을 하게 된다.
자귀꽃처럼 예쁜 사랑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노란색 우산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고 하염없이 걷고 싶은 때가 있었다. 내리는 비도 막을 수 없고 당장 코앞에 닥친 시험도 막을 수 없는 사랑 속에 빠져 있고 싶은 때가 있었다.
새벽, 장맛비를 뚫고 도서관에 도착하여 자귀꽃이 피어 있는 창밖을 내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함께 걸어오는 노란 우산이 보이면 자리에 앉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부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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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
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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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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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희 마리아입니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꾸었던 꿈을 안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섰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으로 피워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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