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셋 젊은 엄마와 늙은 딸의 더부살이 (1)
올해 초 예기치 않은 퇴사로 집콕신세가 되었다. 야근에 철야근무까지 불사하며 바쁘게 지내던 직장인으로써의 생활에 쉼표를 찍고 느슨하고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퇴사의 쓴 맛은 입 안 가득 남았으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던 생활에서 해방되어 여유가 생기니 좋다 싶었다. 새벽에 집을 나섰다가 밤 늦은 시간이 되어야 집에 돌아왔던 생활이 정리되니 엄마도 좋아하셨다. 여유있게 쉬면서 망가진 몸도 보살피고 좋아하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라 하셨다. 네, 그러지요 했다.
엄마는 아흔 넘은 이북 출신 할아버지, 부인 되시는 여든 넘은 할머니, 두 어르신 부부의 말벗도 되어드리고 병원도 동행하며 자식 혹은 마치 ‘요양보호사’와 같은 역할로 일하셨고, 하루에 반나절 아르바이트처럼 신당동 어르신 댁에 다녀오셨다. 그것도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일로 하고 주 5일의 괜찮은 아르바이트였다. 그 나머지 시간은 백수가 된 딸과 시간을 보내셨다.
새벽에는 피곤하다는 그동안의 핑계로 못하던 새벽기도도 함께 하고, 엄마가 집에 돌아오시는 시간에는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다 집 근처 공원을 함께 걸으며 여유롭게 산책도 즐겼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즐겨보는 꽤 괜찮은 여유였고, 즐길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동안의 격무(?)의 후유증으로 대찬 허리통증이 나타났다. 별안간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어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몇 주를 보냈다.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한의원까지 갈 만한 곳은 다 가보았으나 별다르게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 다니고 아플 때마다 엄마와 여동생이 살피고 돌봐주었지만, 나는 아파야 할 정해진 몫을 다 아프고 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퇴사 후의 생활은 코로나 덕분에 단조로웠지만 예순 셋의 엄마와 제대로 된 더부살이의 찐한 적응기로 마음 속은 좋았다 가라앉았다, 기운이 생겼다 힘들었다를 반복하며 굴곡있게 요동쳤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도 나와 같았으리라. 다 늙은 딸과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매일은 좋지만 좋지 않기도 한 시간이고, 서로는 의지가 되면서 귀찮은 그런 관계였으리라. 엄마는 어느 덧 예순 셋, 엄마와 스무살 차이나는 나는 마흔 셋이 되고 보니 앞으로 한살 한살 차곡차곡 나이 먹을 일만 남았나 싶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와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함께 편하게 나이 먹고 '나' 스스로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여기 예순 셋 젊은 엄마와 다 늙은 딸의 달콤쌉싸름한 더부살이를 기록해본다.
야, 다 늙은 딸이랑 같이 사는 게 좋은 줄 아냐?
난 좋은데?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