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쓰는 하루

예순 셋 젊은 엄마와 늙은 딸의 더부살이 (4)

by Sunny Day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다. 항상 웃고 위해주고 서로 보듬어주는 일이 일상다반사일거라 생각했다. 물론 대체적으로 좋다. 그러나, 가끔 아니 종종 일상이 너무 힘들어지곤 한다. 별일 아닌 일이 큰 일이 되고 서로 좋았던 지근거리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다. 현재도 우리 셋은 좋았다 나빴다, 그저그랬다를 반복하곤 한다. 그러나 어찌 말하면 나와 엄마 사이의 일기일 수도 있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동생과 엄마 사이를 나와의 관계로 비슷하게 갖다 붙여서 동료의식(?) 내지는 동질감을 만드는 것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미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엄마는 주방 식탁에 몸을 기대어 유튜브 임영웅 영상을 소리없이 들으며 모르는 사람들의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다. 주방은 엄마가 꽉 잡고 있는 엄마의 공간이고, 코로나 시국의 트로트 영웅인 임영웅을 좋아하게 된 엄마는 별일 없을 때 유튜브를 켜서 임영웅 이름이나 사진, 노래가 나오는대로 무조건 좋아요를 누른다. 나는 거실 한쪽에 놓여있는 커다란 테이블 끝-그러니까 엄마와 가장 멀리 있는 쪽-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도 엄마와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싸웠고 사실 별일 아니었다. 그런데 오해를 하고 괜히 기분대로 따라가다 보니 별일이 되었다. 그 놈의 새로 산 냉장고가 뭐길래, "벌써 기스 났네." 하는 소리에 엄마는 본인에게 기스를 냈냐고 하는 소리로 들으시며 갑자기 버럭하셨다. 갑작스러운 버럭에 나는 왜 소리를 지르며 동네방네 시끄럽게 잔소리하느냐며 쿨하지 못하게 맞장구를 쳤다. 역시 싸움은 양쪽이 같이 불이 붙어야 되는 법인가 보다. 어느 한 쪽도 질세라 언성을 높이고 내가 잘못이냐, 니가 잘못이지 하며 잘잘못을 따지고 들어서 불이 확 붙고 말았다. 그것도 가장 편안한 쉼의 시간인 주말에 말이다. 쉽게 끄지 못한 불은 월요일, 오늘까지 계속 되고 있다.




남동생이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는 날, 애를 쓴다.

점심이 지나도록 늘어지게 누워 자도 모자를 판에 점심도 안되어 일찌감치 일어나 연락을 주었다.


지금 어디야? 엄마와 함께 있어? (아니, 난 병원이야.) 병원 진료는 몇 시에 끝나? (11시 반 예약인데 아직 진료 시작도 못했어) 끝나면 연락해. 집에 같이 올라가자. (알겠어.)


병원 예약시간이 지나도록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아 멍하니 기다리다가 결국 진료와 검사 몇 가지를 받고 나와서 다시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 끝났는데... 어디야?) 누나 어디야? (병원 앞, 빵집 사거리) 차 가지고 내려갈게. (알겠어)


동생 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동생이 아무렇지 않게 엄마보고 내려오시라고 전화하란다. 동생의 방식이다. 별일 아닌 것은 별일 아닌 것으로 부드럽게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신뢰, 믿음이 바탕이 된 행동거지다. 그렇지만 쿨하지 못하고 꽁해져버린 좁쌀만한 마음의 나이든 딸은 엄마와 한 바탕 냉전을 치르고 난 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고 아직 서로 일상적인 대화도 안하고 있는데 왠지 전화하기 어색했다. 동생에게는 집에 올라가서 가져올 게 있다고 둘러대며 집으로 올라갔다. 불도 안켜놓은 주방, 엄마의 영역 한켠, 엄마는 꼭 그 자리에 앉아서 어두운 실내에서 휴대폰 불빛에 기대어 성경을 읽고 계셨다. 난 괜히 소지품을 가지러 온 척 어색하게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며 흘리듯 이야기했다.


... 요한이가 내려오래.


엄마는 내 이야기에 못 들은 척, 눈길도 주지 않으시고 특별한 반응이 없으셨다. 그렇지만 사실 내가 들어올 때부터 굉장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계셨다. 아마도 나갈 때 입을 옷가지를 미리 준비하신 것 같았다. 기다리신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탄 좁은 엘리베이터 안 공기는 아직 어색하게 흘렀다. 주차장에서 동생을 만나 차에 오르니 그제서야 서로 기댈 곳이 있어서인지 엄마랑 나 둘다 조금 편해졌다. 동생은 서울을 벗어나 교외로 나가 맛있는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 갈까 묻지 않고 좋은 데를 찾아왔다고 미리 찾아온 식당 장소로 안내한다. 아마도 물어도 적극적으로 대답할 리 만무했고 그냥 저냥 너 좋을 데로 가자고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동생이기에 만반의 준비를 해 온 것 같았다. 안내한 식당은 소화에도 좋고 입맛도는 메밀 막국수와 보양식 같은 어탕국수 파는 곳이다. 서울을 지나 이십여분을 시원하게 달리니 금새 도착한다. 사람 없는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막국수 한 그릇과 어탕국수 두 그릇을 주문했다. 어탕국수는 직접 잡은 메기로 만들었고 흑마늘도 들어가 면역력에도 좋은 그야말로 보양식이라고 한다. 추어탕과는 비교할 것이 아니라며 정말 자부심을 느끼며 만들고 있다고 사장님이 입이 닳게 자랑하셔서 다른 메뉴는 더 볼 것도 없었다. 나의 약한 소화력, 엄마의 보양 등 고루고루 생각해준 동생의 섬세함이 빛나는 메뉴와 식당 선정이다. 메뉴를 고르고 설명을 들으며 사장님까지 껴든 4자 대화를 하며 엄마와 은근슬쩍 말을 섞게 되었지만 주문을 마친 동생이 화장실에 가고 나니 비어있는 5분이 50분은 되는 것처럼 대화가 끊기고 다시 어색해졌다. 지금까지 왠만해서는 이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엄마도 나도 감정이 많이 상했나 싶었다. 아니면 그 놈의 알량한 자존심 세우고 챙기느라 미안하다 소리도 못하나 싶어서 불편함이 커졌지만 미련하게도 그 불편함을 무릎쓰고도 그냥 그렇게 있었다. 분위기 맞춰, 장난을 걸듯 시덥지 않게라도 말을 걸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못했다. 누군가 말을 걸어 미안하다, 죄송하다 하면 금새 아무렇지 않게 편해지는 것이 모녀 사이인데 그걸 못하고 있었다니 어리석고 미련하지만.

밥을 먹는 내내 맛있냐, 어떠냐, 이것 좀 더 먹어보라, 어르신들 모시고 와야겠다 하며 동생이 식탁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말을 걸고 분위기를 살펴준다. 동생의 고마운 마음으로 모처럼 소화 잘 되는 점심을 먹고 나왔다. 동생이 기왕 나온 김에 나들이 삼아 드라이브 하다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하는데 나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고, 엄마는 괜히 속에도 없는 말로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은데..." 하신다.


가자, 날씨도 좋은데 나들이 삼아 한 바퀴 돌자!


괜히 더 경쾌한 목소리로 권하는 동생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더는 군 소리 없이 우리 둘다 따라나섰다. 아니, 그냥 어디로든 따라가려고 냉큼 차에 올라탔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식당 앞에 좁게 난 길을 따라 운전해가다보니 소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는 길목에 왜가리 서식지가 나온다. 이미 집을 많이 지어놓았는데도 아파트를 만들 셈인지, 아직 집 없는 녀석들이 많은 탓인지 연신 날아다니며 나뭇가지를 주워와 쌓아올리며 새로운 둥지를 계속 틀고 있다. 셋은 보자마자 와 하는 탄식소리와 함께 손가락과 눈길이 날아다니는 새들을 따라다니느라 분주해졌다. 동생은 아예 갓길에 차를 대고 구경하자했다. 난데없이 실컷 새 구경을 하게 된 우리 가족은 평소에는 한 두 마리도 흔히 보기 어려운 왜가리를 떼로 만나게 된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고 왜가리가 이 낯설고 애매해 보이는 길목같은 곳에 이렇게 많은 둥지를 틀게 된 이유에 대해 나름의 추측을 해보며 좀 더 편안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근처에 물이나 먹을 게 많은 곳인가? 소나무가 왜가리가 좋아하는 나무인가? 왜 하필이면 여기에 집을 지을까?


서로 답은 모르지만 활발하게 움직이는 피사체는 가벼운 대화를 오갈 수 있는 충분한 꺼리가 되었다. 꽤나 한참을 새 구경을 한 뒤에 다시 차를 달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 우리는 장보기를 위해 대형 마트에 들르기로 했다. 이사한 지 2주 정도 되어서 이것 저것 구입할 것도 있었던 지라 별로 고민하지 않고 구경도 하고 한참 먹을 식료품과 신선한 과일, 야채를 사러 갔다.


평소 쇼핑을 즐기지 않은 우리 가족이지만 유일한 쇼핑을 할 때가 있는데 바로 대형마트에서다. 오래 두고 먹기 좋은 것들은 마트가 훨씬 싸기도 하고 생필품이니 먹거리니 필요한 물건은 왠만해서 다 모여있고 사람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으니 시간도 줄일 수 있고 재미도 있다. 주차 후 큰 카트를 밀며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는 캠핑용품 코너를 지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그냥 지나쳐 지지가 않았다. 캠핑용 접이식 의자, 텐트, 폴딩박스... 캠핑하면 텐트와 코펠 정도면 되지 했던 내가 너무 구식이었다. 여하튼 새로 이사 온 집에 작은 야외 테라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사 전부터 고민해오던 차에 캠핑용품은 홈 카페를 넘어 홈 캠핑(?)을 꿈꾸게 했다.


햇빛을 가리려면 어닝을 해야 하나, 아님 파라솔이 나은가? 인조잔디를 깔면 어떨까? 6인용 텐트 세트는 너무 큰가?2인용 벤치 의자도 운치있고 좋아보이네.


캠핑 용품 코너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다 우리는 결국 가장 싼 캠핑용 접이식 의자 2개를 샀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캠핑의자 2개를 고른 이후에도 마스카포네 치즈 한통, 그릴용 소세지, 타이거 새우와 베이글 두 세트, 과일, 아침 식사 대용 시리얼 등 큰 카트가 가득 채웠고 인터넷 가입 선물로 받았던 상품권을 요긴하게 사용했다.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엄마가 골라온 새우와 바지락을 만지작 거리며 "왜 이렇게 많이 샀어?"라고 괜히 퉁퉁거리듯 한 소리를 했지만 나 나름대로 민망하지 않은 말 걸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바리바리 구입한 물건을 싸들고 집에 도착해서 저녁 준비를 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피곤해서 새우랑 바지락은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소박한 저녁이었다. 작은 통조림 햄을 노릇하게 굽고 오전에 엄마가 삶고 데치고 했던 야채 삼총사를 펼쳐놓았다. 삶은 양배추와 두릅, 데친 생미역이 고기 넣고 볶은 양념 된장, 양념 고추장, 초고추장과 함께 식탁에 오르니 푸릇푸릇 봄 밥상 같았다. 참치를 듬뿍 넣어 끓인 김치찌개를 푹푹 끓여내고 엄마가 자랑하는 콩 넣은 찰밥을 조금씩 나누어 담고 도라지 무침, 비듬나물과 함께 담아 올렸다. 누구네 식탁과 별다를 게 없지만 꿀떡꿀떡 잘도 넘어가는 양배추 쌈으로 햄과 나물 반찬을 싸 먹으며 맛있는 한 끼를 먹었다.


아, 잘 먹었다!


설거지 후 후식으로 내놓은 거짓말 좀 더 보태면 주먹만한 딸기를 두어개씩 나누어 먹으려고 나 하나 입에 베어물어 오물거리며 벌써 주방에서 거실로 흩어진 식구들 입에 넣어주려고 돌아다녔다. 엄마에게도 권했는데 "나 안먹어, 5시 넘으면 안 먹는 거 알면서..." 하시는데 가장 크고 때깔 좋은 딸기를 권한 걸 눈치채셨는지, 너무 길게 느껴졌던 침묵을 깬 나이들고 고집 센 큰 딸의 손내미는 마음을 느끼신 것 같았다. 엄마의 거절이 불편하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화해가 되었다. 내 호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기분 나쁘지도,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은 상태로 다시 되돌아왔다.


어디야? (여기 종로) 뭐 배운다고 했던 데, 거기야? (응, 학원 두 군데 들러서 상담 받았어요) 밥은? (커피랑 간단히 먹었지. 저녁은 들어가서 먹어야지. 엄마는?) 나도 집에 올라가는 중이야. (나도 금방 들어갈거에요. 먼저 식사하고 계세요)


일상적인 대화가 다시 살아났다. 티격태격하다가도 금새 풀리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하고 서로를 챙기고 돌보는 우리는 예순 셋의 엄마와 마흔이 넘은 나이든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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