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의 미학2

예순 셋 젊은 엄마와 늙은 딸의 더부살이 (6)

by Sunny Day

잔소리의 쓴 맛은 잊을 만 하면 또 올라온다. 반복하여 들으니 익숙할 법도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때에 따라 목구멍에 콱 막힐 때도 있다. 어제가 그랬다. 아침에 들은 엄마의 잔소리는 하루 종일 쳇기처럼 남아서 밤을 넘겼다.


사실 엄마의 잔소리의 시작은 언제나처럼 별 거 아닌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는 별 거 아니지만 말하는 사람인 엄마 입장에서는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것들일 거다.


엄마가 8월에 암 수술을 하신 후에는 세 끼 식사준비를 거의 내가 하고 있다. 어제 아침도 여느 날과 같이 식사준비를 했다. 어제는 식구들 다같이 쉬는 모처럼만의 월요일 휴일이니 아침은 별식으로 먹자고 그제 저녁부터 동생에게 이야기해놓았다. 휴일이니 좀 천천히 일어나서 브런치 분위기 내보자고 말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얇게 부친 팬케이크와 삶은 계란, 딸들이 좋아하는 삶아 데친 통통한 소시지, 그리고 몸에 좋은 야채와 그릭 요거트에 막 갈아 뜨겁게 내린 커피까지 곁들이면 괜찮은 아침밥상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 맛있게 먹을 즐거운 상상하며 아침 고양이 세수만 대충 하고 나름 그럴싸해보이는 아침밥상을 차렸고 조금 늦은 아침을 브런치 삼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설겆이를 하시겠다고 하셨다. 괜찮다며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오늘 아침은 내가 한다’하시며 호기롭게 밥상을 물리시는 엄마 덕분에 동생 회사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며 식탁을 닦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으며 정리를 도왔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설겆이를 마친 엄마가 갑자기 호통을 치시는 게 아닌가


아니, 우리 집이 식당이야?
아침 밥 한끼 먹는데 접시며 그릇을 몇 개나 꺼내놓는거야?
집에 있는 그릇을 죄다 꺼내놓고 늘어놔야 밥 먹는거야?
이사오면서 정리하고 한다더니 이건 더 늘어놓고 도대체 정리가 안되서 말이야.


갑자기 이게 무슨 폭격인가 싶게 엄마가 갑자기 쏘아붙이시는 통에 얼떨떨해졌을 정도다. 아침을 먹고 설겆이를 하고 건조대에 그릇을 올려놓다 보니 아침식사에 사용한 그릇이 과하게 많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식사할 때도 아무 말 없이 기분좋게 잘 드셨고 설겆이는 내가 하겠다 하셔놓고 그제서야 참았던 것을 터뜨리듯 말씀하시는데 잔소리도 그런 잔소리가 없었다. 질문을 내리 세 개나 던지셨지만 대답하라는 질문은 아니다. 나도 안다.


접시 몇 개 쓴 게 도대체 뭐가 문제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의 쏘아붙임에 나도 뾰로통해져서 곧바로 반격했다. 질문에는 질문이지.


한 사람에 접시 하나씩 썼을 뿐인데, 뭐가 문제에요?


쓸데없이 이것 저것 펼쳐 내놓고
수저도 세트라고 사서 받침대에 올려놓고
참 번거로와 죽겠네.

뭐 정리를 해야지.
몇 사람 살지도 않는데 말이야. 이것 저것…


갑자기 몇 달 전에 구입한 받침대 있는 수저세트 타령을 붙이셨다. 먹는 메뉴에 따라 접시를 사용하기도 하고, 밥 그릇과 거기에 맞는 작은 반찬 그릇을 사용하기도 했고, 수저세트는 엄마의 요청으로 식구들 각자 쓸 수저를 색 별로 받침대까지 세트로 구성된 걸 샀을 뿐이었다. 그것도 미리 엄마한테 사진 보여드리고 컨펌 받아서 말이다. 그런데 아침 맛있게 먹고 갑자기 사용하는 그릇과 수저세트가 과하다는 잔소리를 퍼부으시다니, 이해못할 일이었다.


아침 맛있게 먹고 나서 왜 그러시는 거에요?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나는 이해가 안되는데…


갑작스런 잔소리 공격에 나도 방어막을 치며 반격도 해보았지만 엄마의 잔소리에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냥 하실 말씀 할만큼 다 하시고 나서야 끝이 나는 거다. 엄마의 잔소리는 그렇다. 정도가 없다. 끝도 없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듯 어느 정도 잔소리에 절여져 풀이 죽어야 끝맺음이 난다. 나도 몇 번의 방어와 반격을 해보다 안되겠다 싶고 이해도 되지 않아서 그냥 입 닫고 식탁 저쪽 끝에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입을 닫고 한참을 지나서야 잔소리는 끝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명치에 잔소리가 쳇기처럼 꽉 걸렸다. 월요일 휴일이면 다같이 점심을 외식으로 해결하고 경기도 외곽으로 나들이 삼아 드라이브 나갔는데 도저히 점심은 못먹겠다 싶어 포기 선언을 했다.


난 소화가 안되서 점심은 건너뛰어야겠어.
다들 먹고 연락하면 식당 근처로 나갈게.



마치 게임을 하다가 이번 판은 빠지겠다고 이야기하듯 손을 털고 나오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빠졌는데 아침 일찍부터 공업사에 가서 차를 손보고 온 남동생 눈치가 빤하다. 왜 소화가 안되냐고 묻더니 곧장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엄마가 가자하는 소고기 국밥파는 식당으로 식구들을 내몰아 나갔다. 운전 못하는 내게 자기 집에 차 좀 가져다 놓으려냐는 애꿎은 농담을 던져놓고 말이다.


엄마, 엄마 잔소리는 언제는 보약같은데, 언제는 추운데서 먹는 김밥같애. 체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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