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싸고 자고

예순 셋의 젊은 엄마와 늙은 딸의 더부살이 (2)

by Sunny Day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먹고, 싸고, 자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름 바쁘게 지낸다고 할 때는 ‘바쁨’에 취해서 먹고, 싸고, 자는 것을 너무 소홀히 했다. 누가 물어보면 중요하다고는 대답했겠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그 세 가지를 화두에 올리는 사람도 없었고 별로 실감나지 않기도 했다.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도 일에 매여있고 일에 나를 꿰어 맞추는 아주 안좋은 습관이 들기도 했다. 몸 담고 있던 조직이나 상사, 상황과 환경, 일에 대한 몰두와 꼴난 책임감 등이 ‘일 중심의 나’를 만드는 데 협력했을 것이다. 먹고 싸고 자는 것은 오히려 바쁠 때에 더 중요성이 드러나야 할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보다는 쉼을 누릴 때 더 실감하게 되었다. 충분히 먹고 싸고 잘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 가지가 누려지지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먹고 싸고 자고’를 할 컨디션과 에너지가 뒷받침 되어주지 않았다. 잘 먹고 소화시킬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싸는 것도 어렵고 스트레스때문인지 자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쉬어야해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엄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먹고 싸고 자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다 아는 것을 왜 잔소리처럼 이야기하실까 싶어 흘려듣다가도 결국 나 좋을 이야기에 순복했다.


그래야죠. 근데 지금도 잘 먹고 있는데 뭐…


대답만큼 성에 차지 않는 것은 딸이 매일 밤 몰래 먹고 냉장고 옆 벽 사이 틈 사이에 새것 마냥 살짝 세워놓은 드링크 소화제병이다. 밥은 못 먹어도 가루나 알, 액상 형태로 다양하게 구비해놓은 소화제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 늙은 딸은 엄마에게 늘 한숨이다.


아이고, 옛날 분들 같으면 고물짝 위장, 무덤에 가서라도 바꿔 오라고 할 텐데…
맨날 소화제만 달고 살아서 어쩌냐



드링크 한 박스를 사면 일주일이면 뚝딱 새 병과 헌 병을 고대로 바꿔놓는 신공을 부리는 딸의 소화력에 혀를 내둘내둘 하시곤 했다. 그렇지만, 며칠에 한 번은 약국을 들려 한 박스, 두 박스 무겁게 소화제를 사오시는 건 결국 엄마였다. 어쩌면 그거라도 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다 먹다, 이제는 마흔을 훌쩍 넘겨버린 늙은 딸은 예순 셋의 젊은 엄마에게 아직도 빌붙고 있다. 빌붙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극진한 돌봄을 받고 있다. 나는 첫째인데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바쁘셔서 내 앞가름은 내가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학교나 집에서 모범생에 책임감 있는 첫째 노릇까지 잘 했었다. 둘째, 셋째보다는 뭐든 내가 알아서 하는 편이었는데 어린 시절에도 받아보지 못한 보살핌을 마흔이 넘겨 받고 있으니 감개량 무량하다. 그런데 뭐든 알아서 책임감있게 잘 하던 모범생같은 나도 많이 변했나보다. ‘엄마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보다는 ‘엄마가 보살펴주니 좋다’가 더 커졌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 지금을 잘 누리고 싶어진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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