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는 삶_1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 손해보고 있거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거칠게 내뱉는 말, 뚝뚝하다못해 공격적인 쏘아붙임이 마땅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그렇게 한다고 그 손해가 원상복귀되거나 자기의 명예(?)가 되찾아지는 것도 아닐텐데,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못난 칭얼거림을 계속한다.
엄마를 모시고 삼사십분 거리의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을 하러 가던 길, 자양동 어디쯤 칠십대 정도는 되시는 듯한 할머니께서 버스에 타셨고 기사님께서 넘어지니 손잡이를 꽉 붙잡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중 할머니께서 불편을 내색하시며 역정을 내시는 통에 우리 모두 그 두 분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넘어지니까 꽉 잡으세요."
"뭐에요? 왜 말을 그렇게 뚝뚝하게 해요?"
"손잡이 잡으라는 거죠. 조심하시라고."
"그니까, 넘어지니까 조심하세요. 이렇게 말하면 되지 왜 그렇게 말해요?"
"네네~잘 붙드세요. 넘어지니까 조심하세요."
"아주 말이야. 기분나쁘게. 말을 그렇게 해서"
"네네~조심하세요."
도대체 뭐가 잘못됐는지 대화만을 들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유추해본다면 걸음이 좀 더디고 보폭이 짧은 어르신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기사님이 하신 이야기가 빨리 자리잡아 앉으라는 재촉 아니면 잘 잡아야 넘어지지 않을거라는 곱지 않은 핀잔처럼 듣고 기분 나쁘신 모양이다. 반면 기사님은 나이많은 손님이 버스에 오를 때부터 일찍이 알아보고 조심하시라는 나름의 챙김 메시지로 이른 안내를 하신 것 같다.
어찌보면 기분나빠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어르신은 계속 기분나쁘다며 쳇쳇~큰 소리로 혀를 차며(보통은 혼잣말 정도의 작은 리액션일텐데) 버스 안 승객 누군가의 동조를 구하는 모양으로 자꾸 여기저기 눈길을 주시지만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아주머니 한 분이 기사님을 두둔하셨다.
"기사님께서 할머니 다치실까봐 조심하시라고 말씀하신건데요. 뭘 그렇게..."
"조심하라고는 무슨, 그럼 말을 왜 뚝뚝하게 그래?"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넘어지시니까."
그러고는 본인 자리를 양보하며 일어나시는데, 시장본 짐이 한가득이었다. 오죽하면 양손그득한 짐에도 자리를 내어주시려 할까 싶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이 작은 소란이 잠재워지리라 생각하셔서 마음을 쓰시는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결국 자존심때문이신지 아주머니의 자리양보에도 응하지 않으시고 두 정거장은 서계시다가 이후에야 다른 빈자리에 앉으셨다. 아주머니가 양보한 자리는 십대나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어부지리로 홀라당 자리를 차지했다.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빈 자리는 차지하면 그만이라는 것처럼.
금세 버스안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지만, 인내심없고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같아서 씁쓸함이 남았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또는 상관있다 하더라도 깊이 개입하지 않은 것이라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만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갈 논리를 가지고 있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며 정말 혀를 찰 일이다 했는데 나이 좀 드셨다 하는 어르신께도 상대를 배려하는 여유를 찾아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자문자답해본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어떤 공동체에 살고 싶은가.
난 나의 일을 할 뿐입니다. 내 영역을 지키는 일. 지극히 백퍼센트 내가 개입하고 내 소관에 들어오는 것만 신경씁니다. 누구의 침해도 받지 않고 내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부분, 오롯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영역의 일만 합니다. 그 이상의 다른 것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관심조차 없습니다. 괜히 남의 일에 쓸데없는 참견을 하다 자기 밥그릇도 못챙기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어리석은 짓이지요. 요즘같이 정보가 넘쳐나고 스피드가 생명인 때에 여기저기 주위에 눈을 돌리고 멈춰섰다가는 성공은 커녕 도태되기 쉽습니다. 각자 자기 일만 제대로 한다면 누구의 힘을 빌릴 필요도, 챙겨줄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내 영역을 지키는 일, 이기적인 것 같지만 사실 가장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사는 방법입니다.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거침없는 이들. 소위 성공하려면 자기PR을 잘해야 한다, 자기 주장은 존재감과도 같다, 자기포장을 잘하는 것이 능력이다. 라고 수많은 매체로부터, 성공했다 자부하는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란 이들에게는 자기 앞가림(만) 잘하고 스스로를 잘 챙기는 것이야말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이해하는 격이 되었을까.
더불어, 함께, 늦더라도 그렇게...
지금껏 만났던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