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촬영지
고성에 가면 아주 오래된 마을 하나가 있다. 100살이 되어가는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왕곡마을이다. 바다와 멀지 않지만 산을 배경으로 하여 산골마을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마을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내려간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했던 함부열이 간성으로 내려와 숨어 살았는데, 함부열의 손자 함영근이 왕곡마을에 뿌리를 내리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현재는 왕곡마을의 위쪽에는 양근 함씨가 아랫마을에는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될 만큼 마을 자체가 역사적인 유산이기도 하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초가집과 기와집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벚꽃을 보러 간 여행이었는데, 목련꽃을 더 많이 만났다. 마을 안에는 집집마다 목련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만개하여 한옥풍경이 더욱 운치 있었다. 마을은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구경하다 보면 곳곳에 정겨운 생활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래 사진은 북어?를 말리는 모습이다. 이 외에도 집에서 직접 기른 닭이 낳은 계란이나 각종 농산물을 파는 집도 있고, 민박을 운영하는 집들도 있다. 마을 구경 중 ‘청란 팔아요’라는 집 앞 팻말을 보게 되었다. 청란은 마트에서는 구하기 힘들어서 가끔 시골장에서 마주치면 사 오곤 하는데, 몇 알이라도 사가고 싶어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며칠 전 아드님이 오셔서 유정란이고 청란이고 다 가져가셨다고 하여 못 샀다..ㅎㅎ
왕곡마을을 산책하다 보면 각 집마다 대문과 앞마당에 담장이 없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이게 북방식 가옥의 특징 중 하나다. 북쪽은 적설량이 높기 때문에 앞마당의 대문과 담장을 허물어 적설로 인한 고립을 방지하고, 일조량을 높인다. 집의 기단이 높은 이유도 강원도는 눈이 한 번 내리면 높이 쌓이기 때문에 집안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북방식 가옥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겹집 구조가 많다.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담은 영화 ‘동주’를 왕곡마을에서 찍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의 20%가 왕곡마을에서 촬영되었는데, 왕곡마을은 남한지역에 북방식 가옥이 남아있는 유일한 전통마을로, 윤동주 시인의 생가인 북간도 용정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냥 시대극은 아무 한옥에서나 촬영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로케이션 하나에 이런 디테일이 담겨있다니..
왕곡마을 집들 곳곳에는 아래 사진처럼 지붕에 항아리가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항아리를 높이도 올려놓으셨네라고 생각했는데, 항아리 굴뚝이라고 한다. 항아리 안에서 연기를 한 번 더 머물게 해서 열기를 좀 더 머물게 하고, 불씨를 항아리에 가두어 화재를 방지하는 목적이라고 한다. 기능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굴뚝은 이제는 장작을 떼지 않기에 기능은 다하였겠지만, 가옥에 멋을 더해주고 있다.
마을 입구로 되돌아가기 전, 왕곡한과에 들렸다. 마을 정상에 위치한 전통한과 집이였다. 한과 한 상자와(10,000원) 수정과를 시켰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집 앞마당에 앉아 수정과 타임을 즐겼는데, 그 어느 카페보다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마을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마을 풍경은 아무 카페에서나 즐길 수 없는 멋진 뷰였다. 한과도 정말 맛있었다. 한과 특유의 엿기름 쩐내 때문에 안 좋아하는데, 왕곡한과는 기름내도 안 나고 적당히 달아서 맛있게 먹었다. 여름이면 왕곡마을에 연꽃이 가득하다던데, 여름의 왕곡마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