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시티배스
학회 발표가 끝난 다음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수영을 다녀왔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구글맵에 방문하는 도시마다 수영장을 잔뜩 찾아 다 저장해 놨다. 호주는 멋진 야외수영장이 참 많은 곳이다. 멜버른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지만 나의 열정으로 야외 수영장쯤은 극복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망상은 멜버른에 발을 딛자마자 산산조각 났다. 숙소에 도착해 캐리어에서 내복부터 찾아 입었으니 말 다했다..
학회 기간 동안 머물렀던 숙소에 수영장이 있었지만, 레일도 짧고 본격 수영연습을 위한 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물 온도가 자쿠지 수준이라 몇 바퀴 돌고 나면 숨이 가빠져 불쾌해 몇 번 안 갔다.. 내가 방문한 멜버른 시티배스(Melbourne City Baths)는 1860년에 오픈한 수영장으로, 멜버른 도심에서 가장 큰 수영장이다. 처음 시티배쓰를 검색했을 때 클래식한 외관에 반했는데, 개장 연도를 보고 조금 걱정이 몰려왔다..ㅎㅎ 150년도 더 된 수영장이 컨디션이 어떨지.. 하지만 난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먹어봐야 하는 성격이라.. 수영도구들을 챙겨 길을 나섰다.
멜버른 도심(CBD)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시티배스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수영장뿐만 아니라 헬스, 필라테스, 스쿼시 등을 위한 체력훈련장과 스파도 마련되어 있다. 수영덕후인 나는 오로지 수영만 하고 왔지만.. 추운 날씨에 스파도 할까 망설였지만, 시티배스의 나이 때문에 망설이다 수영만 하고 왔다. 사진에서 보던 대로 빌딩 숲 사이로 빨간 벽돌의 시티배스는 클래식 그 자체였다.ㅎㅎ
https://maps.app.goo.gl/wzPb4Qdx42RKcZNz9?g_st=ic
이 수영장은 휴무가 없다. 수영러들에게는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평일에는 오전 6시에서 저녁 9시, 주말(토, 일)에는 오전 8시에서 저녁 6시까지 운영을 한다. 수영장 입장에 따로 회원가입은 필요 없고, 호주달러로 7.2불이었다. 한화로 6천 원 정도. 근데 이 가격은 2023년 6월까지 가격이고, 7월부터는 조금 인상된 7.8불이라고 한다. 한국 공공 수영장보다는 조금 더 나가는 가격인데, 호주 물가를 생각하면 비슷한 것 같다. 수영장 입장료에는 무료 락커 사용도 포함되어 있다. 멜버른 시티배쓰는 칸막이 샤워실이 나눠져 있는데, 샤워실이 많지 않아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는 줄을 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각종 샤워도구와 타월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챙겨가야 한다. 그리고 슬리퍼를 하나 챙겨가면 좋다. 맨발로 다녀도 되지만 조금 찝찝할 수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고 다닌다..)
이 날 나는 11시 반쯤 방문을 했는데, 사람이 많이 없어서 혼자 레인을 독차지할 수 있다. 럭키 걸. 며칠 만의 수영이라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입수했는데, 물 온도가 생각보다 높아 당황했다..ㅋㅋ 운동을 하기에는 좀 따뜻한 온도였다. 그래도 일단 출발..! 자유형 2비트로 몸을 풀기 시작했는데, 레인 깊이가 갈수록 깊어져서 당황했다. 출발할 땐 분명 1미터 수심이었는데, 점점 깊어져 도착하니 발이 닿지 않았다. 한쪽은 1미터고, 다른 한쪽은 2.25미터다.
몇 바퀴 돌고 나니 물도 생각보다 뜨겁고 깊은 레인에 당황해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낯섦이 수영에 대한 욕구를 마구마구 짓눌렀는데, 왠지 그냥 가면 지는 것 같아서 꾸역꾸역 20바퀴를 채우고 왔다. 이 날의 연습은 킥판발차기 4 - 자유형 2비트 6 - 평자 6 - IM 2 set. 하다 보니 적응이 돼서 할만했는데, 뒤에 일정이 있어 아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파는 수영장 안에 딸려있는데, 남녀 혼탕이고 수영복을 입고 들어간다. 멜버른 시티 배스에 대해 총평을 해보자면 완전 최신식을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고, 멜버른에 온 수영덕후라면 한번쯤은 방문해 볼 만한 수영장이다.
수영을 마치고 나와 시티배쓰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봤다. 사실 수영 끝나고 나왔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 시티배스의 실물이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필터처리로 갬성을 살려봤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