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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와시간 Oct 27. 2022

계절이 허용하는 것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눈을 감고 계절의 숨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 한가로운 풀밭에 앉아 계절의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다. 봄에는 숨 끝에 따스한 볕이 있다. 여름에는 숨 끝에 바다 내음이 있다. 가을에는 숨 끝에 바스라진 낙엽 향이 있다. 겨울에는 숨 끝에 비릿한 눈의 흔적이 있다. 그렇게 계절은 저마다의 숨을 가지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찰나에, 두 계절이 오묘히 섞이는 숨의 교환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봄의 따스한 볕의 향과 여름의 뜨거운 풀의 향이 섞일 때 여름이 온다는 사실에 설렌다. 이제 좀 늘어지겠구나. 방학도 오고 휴가도 오니까 이제 좀 늘어지겠구나 생각한다. 끝여름의 희미해진 풀 향기와 가을의 상쾌한 공기가 섞이면 이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겠구나 싶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푸른 나무와 푸른 하늘이 뒤섞여 내 이마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툭 툭 하고 떨어져 ‘이제 늘어진 거 주워 담아 볼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차곡차곡 늘어짐을 주워 담고 옷도 여미고서, 또 돌아온 새 계절을 맞이하며 걷는 기분은 늘 새로운 시작 같았다. 바스락 소리가 나는 건조한 낙엽 향이 차가운 바람 끝에 실려가고, 볼 위로 눈꽃이 떨어지면 몸을 웅크렸다. 황량하게 서있는 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봄이 오겠네. 겨울이 왔으니까 봄이 오겠다. 시린 겨울의 숨 끝에 희미하게 꽃향기가 나면 마음이 춤을 췄다. 꽃향기를 리듬 삼아 춤을 췄다. 그렇게 마음이 춤을 추면 봄은 찬란하게 피고 꽃잎이 춤을 추며 떨어졌다. 춤추는 꽃잎이 손바닥 위로 살포시 내려앉으면, 계절의 순환에 감사했다. 





  계절이 허용하는 것들에 감사했다. 사계절이 자신만의 숨과 함께 가지고 오는 것들에 감사했다. 봄날의 설렘을 허용하는 것에 감사했고, 여름날의 허용된 늘어짐에 감사했다. 그리고 가을에 성숙하게 익어감을 허용하는 것에 감사했으며, 겨울날에 내 안으로 침잠하여 웅크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에 감사했다. 이 우주에서 사계절을 아직은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주에 사계절이 있음을 감사했다. 신인지, 또는 에너지의 순환인지 모를 무엇이 만든 사계절에 감사했다. 그리고 우주 안에, 지구 안에, 사계절 안에 내가 온전히 있음에 감사했다. 사계절은 이렇게나 내가 감사에 진심인 사람이 되게끔 한다. 투덜대고 찡그리는 일상을 잊고, 사계절의 숨 아래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끔 한다. 나는 바란다. 이 사계절이 사라지지 않고 훼손되지 않고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기를. 지금까지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당신의 계절은 당신에게 무엇을 허용하나요? 당신의 계절도 늘 그러했듯이 순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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