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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와시간 Oct 11. 2022

계절이 허용하는 것들 - 가을: 홀로서기

  가을의 끝은 서럽다. 선선했던 공기가 어느새 시리게 느껴지고 겨울이 다가옴이 느껴지면 서럽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도 아닌데, 해가 짧아지는 것이 이렇게나 서럽다. 서러운 가을의 끝자락에서 계절은 홀로 서는 시간을 허용한다. 서러움을 퍼런 손 끝과 함께 주머니에 담고 서러운 시간을 견디게 한다. 내 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주머니에 담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서글픈 눈빛도 담고서 홀로 설 수 있게 한다.




  가을이면 늘 돌아오는 명절에 우리 가족은 서울 큰집에 갔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울에 들어서면 오늘 정말 명절이구나 싶었다. 아빠는 큰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끔 표했지만, 명절에 큰집에 가는 것을 빼먹지는 않았다. 정갈하고 푸짐하게 차려진 차례상 앞에 서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드리는 것이 최 씨 피를 이어받은 후손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임을 매 계절마다 배웠다. 한 번은 큰집에 가는 길목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아빠와 엄마는 크게 화가 났는데 어린 나는 무료한 일상의 이벤트 같아 웃음이 났다. “명절에 큰 집 가는데 차가 벽에 부딪혔지 뭐야”라며 학교에서 만날 친구에게 말할 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아빠는 차례를 지내러 가야 한다며 어딘가 고장이 난 차를 갓길에 두고 앞장섰다. 흰색의 개량한복 같은 옷을 입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어쩐지 든든했다. 차가 고장난 것쯤에 개의치 않는 의연함과 차례 지내는 시간을 맞추려는 고집스러움이 든든했다. 펄럭이는 아빠의 흰 옷이 멋져 보였고 그 뒤를 따르는 게 좋았다.




  아빠는 이제 차례상 앞이 아니라 차례상 위에 앉는다. 차례상 위에 앉아 고된 엄마가 차린 차례 밥을 먹는다. 아빠가 죽은 뒤에도 우리는 큰집에 제사를 지내러 갔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이가 없어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갔다. 선선하지만 끝이 시린 가을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우린 이제 정말 아빠가 없는 삶을 사는구나. 가장이 없는 삶은 생각보다 더 서럽구나. 차가 없으니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 뭐 대수냐 싶겠지만, 차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차를 운전하던 아빠가 없음이 서러웠다. 가을이면 돌아오는 명절에 차례상 위의 아빠 사진을 보며 서러웠고, 아빠 없이 떠나는 명절길이 서러웠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다가 명절이 오면, 전을 부치며 아빠가 좋아하던 음식들을 차례상에 올리며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빠는 이제 육신이 없는 혼으로 있구나 하는 것을. 유난히 추운 가을날 한산한 거리에서 옷을 여며 쥐고 택시를 잡는 엄마의 뒷모습이 추웠다. 서울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제사를 드리러 가는 길 아빠가 함께 있지 않음에 추웠다. 이제는 아빠가 우리 곁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추웠다. 그렇게 가을은 되돌아오는 명절마다 홀로서야 함을 일깨웠다. 나도. 엄마도. 내 동생들도. 우리 가족 모두가. 스스로 홀로서야 함을 일깨웠다.




  우리는 이제 수많은 가을을 지나쳐  발로 홀로   있게 되었다. 운전을 모두 배웠고, 각자의 가족이 더해졌고, 아빠의 사진 앞에서 웃음질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가을은 우리 가족에게 매해 홀로서기를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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