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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와시간 Oct 17. 2022

계절이 허용하는 것들 - 겨울: 미끄러지기

  겨울은 수분을 가진 모든 것을 옴짝달싹 못하게 얼려버린다. 풀잎 위로 미끄러지는 작은 물방울을 얼리고, 잔잔하게 출렁이는 호수도 얼리고, 무심하게 철썩대는 바다도 얼린다. 그리고 내 발밑의 웅덩이도 얼린다. 겨울에는 투명하지만 얼어버린 그 속은 모르겠는 얼음 위를 지나야 한다. 얼음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듯이 지나야 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놀이동산에 위치한 스케이트장을 바라보면 이질감이 들었다. 소란스럽고 경쾌한 놀이동산의 소음과 무심하게 얼어있는 얼음판이 서로 버무려지지 않았다. 놀이동산 위에서 스케이트장을 바라보면 다른 공간 같았다. 날카로운 은빛 위에 발을 얹고서 춤을 추듯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보면, 그곳은 중력이 없는  같았다. 그곳의 사람들은 중력을 이기며 발을 떼지 않았다.



  스케이트장에 처음 갔을 때 배웠다. 차가운 얼음 위에서는 아스팔트 위에서처럼 발을 떼면 안 된다는 것을. 중력을 이기려고 들어 올린 발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걸어보려고 안전바를 잡고 아무리 버둥대도 소용없다. 버둥대다가 미끄러져 넘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미끄러지는 대로 미끄러지는 것. 그것이 얼음을 지나는 방법이다.


  겨울에는 길가의 웅덩이들이 언다. 비나 눈이 온 뒤에는 거리 전체가 언다. 인간들의 사정이야 관심 없다는 듯이 얼어버린 거리 위에서는 미끄러지는 수밖에 없다. 걸으려고 발을 위로 크게 떼면 넘어지고 만다. 얼음 위를 슥슥 미끄러지듯이 지나쳐야 한다. 그리고 다시 아스팔트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걸어 나가면 된다.




  찬 바람을 뒤로하고 나의 20대와 30대 절반을 보내버린 직장을 두고 왔다. 그곳에서 겼었던 설렘과 분노, 고마움과 원망, 관계와 그리고 나를 두고 왔다. 두고 온 것이 맞았다. 그곳에서의 일을 모두 버리고 오겠노라고 마음먹었지만, 그러지 못해 두고 왔다. 퇴근길에 늘 듣던 라디오 소리를 차 안의 공기에 깔고, 건물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왔다.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오는데, 내가 미끄러지는 기분이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차 안의 따뜻한 공기가 대립하다 만들어낸 유리창의 물방울이 된 것 같았다. 어떤 실존적 결단으로 선택한 것이라 포장했던 것들이 미끄러져, 발가벗은 내가 드러난 것 같았다. 차에 내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고. 억지로 발을 떼면 넘어지니까, 지금은 잠시 미끄러지면 된다고. 이 겨울이 지나면 얼음은 녹기 마련이라고. 지금 잠시 얼음 위를 미끄러지다가 뽀송뽀송한 거리가 되면 다시 발을 떼고 걸으면 된다고. 그때의 발걸음은 중력을 이기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겨울날 얼어버린 땅 위는 걷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것이다. 춤을 추듯 미끄러지다 보면, 다시 중력을 이기고 걷는 날이 온다. 춤추듯 미끄러지는 날도 있고, 힘차게 걸어 나가는 날도 있는 것이다. 겨울은 춤추듯 미끄러지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미끄러지는 날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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