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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와시간 Oct 05. 2022

계절이 허용하는 것들 - 봄: 봄밤의 벚꽃

  시린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면 모든 것은 찬란하게 핀다. 따스한 볕을 환영하는 축제를 하듯이. 웅크리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삶의 순환을 환영한다. 환영의 축제에 벚꽃은 빠지지 않는다. 연분홍 벚꽃잎이 봄바람에 흩뿌려지는 모습은 마치 축제의 피날레 같다. 이처럼 봄은 벚꽃이다.

 



  따스해 일렁일렁하는 봄볕을 받고서 분홍빛을 발산하는 벚꽃은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봄볕 아래의 벚꽃보다 봄밤의 달빛 아래에 있는 벚꽃을 좋아한다. 우선 봄밤이 좋다. 춥고 시린 겨울밤을 보내고 나면, 따스한 봄기운이 피부를 감싸는 봄밤은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나 겨울을 이겨낸 풀과 꽃의 향기가 적적한 봄밤의 공기에 섞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봄밤의 달이 좋다. 겨울밤의 달은 춥다. 겨울밤의 달은 서글프다. 시린 입김 사이로 보이는 달은 시리다. 하지만 봄밤의 달은 포근하다. 봄밤의 달은 수줍다. 훈훈한 기운 사이로 보이는 달은 은은하다. 그리고 은은한 달빛 아래 분홍빛을 살포시 감추고 있는 수줍은 벚꽃이 나는 좋다. 환한 볕 아래에서의 벚꽃잎의 흩날림도 좋지만, 달빛 아래의 벚꽃잎의 흩날림은 더욱 좋다. 달빛 아래에서 훈훈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손길을 타고 사선으로 흩어지는 벚꽃잎은 신비롭다. 낮보다 고요하고 낮보다 신비롭고 낮보다 은은한 벚꽃잎이 흩어지는 모습은 봄이 주는 선물이다.




  대학교 축제 날이었다. 학교는 축제를 한다고 떠들썩했다. 저녁 어스름에 축제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가득했다. 교정의 나무 벤치에 앉아 학교를 바라보면, 벚꽃 나무들이 보였다. 그 벚꽃 나무들에서 벚꽃잎이 떨어지면, 축제를 환영하는 누군가가 폭죽을 터뜨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봄은 축제고 저녁 어스름의 벚꽃잎은 환영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대학교 교정을 내려오다가 벚꽃을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 벚꽃 나무 아래에 섰다. 벚꽃 나무 아래에서 벚꽃과 달빛을 올려다보며 웃으면 무해하고 행복한 기운이 봄밤을 가득 메웠다.



  딸아이와 동네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 아파트를 둘러싼 벚꽃 나무 사이로 달빛이 보이면 봄밤의 기억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잎이 떨어지면, 딸아이와 웃으며 벚꽃잎을 손에 담았다. 그리고 함께 웃으며 소원을 빌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또 이렇게 행복한 봄이 오게 해 달라고. 벚꽃에 봄밤에 달빛에.




  따스하고 밝은 기운 탓에 밤은 없을 것 같은 봄에도 밤은 있다. 그리고 달도 있다. 봄밤의 달빛 아래 흩날리는 벚꽃도 있다. 봄은 봄밤의 벚꽃. 달빛 아래의 수줍은 벚꽃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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