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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와시간 Oct 05. 2022

계절이 허용하는 것들 - 겨울: 웅크림 속의 나

  겨울에는 뱀이 긴 몸을 돌돌 말아 웅크린다. 거대한 곰도 거대한 송 뭉치처럼 몸을 웅크린다. 개구리도 용수철 같은 다리를 접어 넣어 웅크린다. 코끝과 발끝이 시려 동동거리며 서 있는 버스정류장의 사람들도 몸을 웅크린다.     





  모든 생명은 자기 보존을 위해 웅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꽃은 피어야 하고, 동물은 운동하고 번식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도 피고 운동하고 번식해야 한다. 모든 존재는 존속이라는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삶을 순환한다. 그런데 이 존속이라는 것이 쉼, 웅크림 없이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계절은 겨울의 웅크림을 허용한다.      




  겨울엔 추워서 혹은 눈이 많이 내려서, 바람이 세게 불어서라는 핑계로 집에 머문다. 누군가에게는 타당한 이유일지라도, 나에겐 핑계가 맞다. 겨울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적당한 계절이다. 겨울을 핑계 삼아 고독을 즐기다 보면, 고독 속에 침잠하게 된다. 그리고 고독 속에 침잠된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사람들 속에서는 진짜 나를 마주하는 일이 드물다. 정해진 규정 안의 나, 규격화된 관계 속의 나, 세상의 프레임 속의 나가 아닌 온전한 나를 만나는 일은 고독 속에서 가능하다. 고독 속에서 외로워하고 밀려오는 두려움에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견디다 보면, 진짜 나를 만난다. 외로움 속에서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괴로워하다, 불현듯 진짜 나를 만난다.      


  이때의 나는 웅크린 나여서 처음엔 반갑지가 않다. ‘이런 게 나란 말인가’라는 불평이 쏟아진다. 그러다 그런 나를 연민하게 되고 감싸게 된다. 그렇게 웅크리며 겨울을 보내다가 코끝이 따스해지고 볕이 길어지면, 진짜 나는 기지개를 켜게 된다. ‘이제 나갈 시간이구나. 웅크리며 충전한 에너지를 펼칠 시간이구나’하고 볕을 받아들이게 된다. 한없이 웅크리는 날은 없다. 언젠가는 기지개를 켜게 된다. 겨울은 이러한 삶의 순환을 또 한 번 맛보게 한다. 겨울은 웅크림을 허용한다. 그리고 웅크림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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