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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와시간 Sep 30. 2022

계절이 허용하는 것들 - 가을: 가을볕 사이의 바람

  더움과 시원함. 뜨거움과 서늘함. 이러한 상반됨을 함께 품고 있는 것이 가을이다. 가을은 상반됨을 한 계절 안에 모두 품고, 우리가 상반된 것들을 함께 놓고 즐길 수 있도록 허용한다.




  여름날의 달리기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긴 어렵다. 비가 그치고 난 뒤 축축한 땅 위를 달릴 때. 혹은 우연히 바람의 방향과 러닝의 방향이 맞부딪힐 때 바람은 아주 잠깐 스칠 뿐이다. 그런데 가을은 여름 볕만큼이나 뜨거운 가을볕 사이에 바람을 넣어둔다.



  봄볕엔 며느리를 내놓고 가을볕엔 딸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가을볕은 봄볕 그리고 여름볕만큼이나 뜨겁다. 그러한 가을볕을 마주하고 달린다는 것은 여름날의 달리기만큼이나 힘들다. 가을볕 아래에서 헉헉대며 달리다 보면 볕으로 인해 달궈진 숨을 뱉어내고 싶어 진다. 더 달리다 보면 달궈진 숨 끝에 나를 뱉어내고 싶어 진다. 그리고 시원한 가을 공기를 목구멍 깊숙이 폐부 깊숙이 발끝까지 촘촘하게 채워 넣고 싶어 진다. 이때 가을은 뜨거운 볕과 대조되어 시원함이 배가되는 가을바람을 허용한다. 가을볕 아래에 내놓아진 딸처럼 달리다 보면, 어느새 가을바람은 땀에 젖은 목덜미를 그리고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귓불을 그리고 붉어진 뺨을 감싼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을볕 아래에서 지친 세포들을 감싼다. 이제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듯이 선선한 공기를 품고. 그러면 가을볕 아래의 달리기도 달릴 만해진다. 그리고 또 한 계절이 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뱉어낸 숨과 맞바꾼 가을 공기를 만끽하면, 비우고 채운다는 삶의 진리를 또 마주하게 된다. 가을은 뜨거운 볕 사이의 시원한 공기를 허용한다. 뜨거운 숨을 뱉고 시원한 공기로 나를 채우고 또 한 계절이 오는 것을 온몸으로 만끽하도록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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