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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Nov 10. 2023

어쩌다 채용담당자

권고사직 시대의 채용담당자

직무 고민을 졸업하고 나서야 시작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어요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직무 고민을 시작했다.

평범한 사회과학대 전공에 연극영화 연출을 복수 전공한 나는, 영화 현장에서 오래 버틸 자신은 없었고 막연하게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공공분야나 문화재단을 고민했다. 게다가 졸업 통과를 안 시켜주기로 유명한 교수님을 만나 고생하며 막학기를 모두 졸업요건 채우는 것에만 몰두했더니,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졸업을 맞이했다.

당연히 졸업 유예를 했고, 새해를 맞이한 나는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말이 취업준비지 그냥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학교의 취업지원센터에 무작정 상담을 신청했고, 상담사님은 완벽히 노베이스인 어린양에게 모든 직무를 간략히 브리핑해 주었다.

그리고 이 상담에서 나의 2년 간의 진로가 결정되었다.


"사기업에서 공공기관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거꾸로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돼요"

"문화재단은 처우가 많이 낮아서, 집에 돈 많은 애들이 취미로 다닌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공기업, 사기업, 재단 등등 다양한 유형의 회사를 경험해 봤다고 하는 그 상담사님은 진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어디 하나 꼭 하고 싶은 게 없다면, 일단 사기업을 경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이다.

나는 수긍했다. 그 와중에 진로 상담을 하고 있는 상담사님의 직업에 관심이 생겼다. 이런 대학지원센터에서 상담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상담사님께서는 이 직업은 여러 경험을 거쳐야만 할 수 있으니, 지금 당장은 무리라고 말씀하셨다.

아쉽...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가?

사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마케팅이나 MD는 물건 자체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영업은 성격 상으로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안 맞을 것 같았다. 없는 말을 못 하는 나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데이터나 회계는 그냥 태어날 때부터 내 길이 아니었다.

크게 분류되는 직무에 내 관심사는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막막했다. 나는 뭘 해야 잘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을까?


내가 전공을 선택하고, 여러 활동들을 해오는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사람과 관련된 것에 관심이 많았고,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의 흐름에 집중했다.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대학 생활을 이어왔지만, 그 바람이 나에게 직업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는 것에 조금 슬펐다. 차라리 사회복지학과 복전을 할까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인 걸.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직무는 바로 '인사'였다.

사람에 대한 일.


대학교 내내 인사 직무나 경영에는 관심이 전혀 없던 내가 인사 직무로 취준을 시작했다. 보이는 공고에 모두 지원하면서 자소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물론 숫자와 매우 먼 스스로를 잘 알기 때문에, 급여나 보상 쪽은 넘보지도 않았고, 주로 채용/조직문화 쪽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생뚱맞은 이력서를 납득시키기

운이 좋게도 채용/조직문화 직무에서 각종 행사 경험이나 포토샵/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경험을 우대하는 곳들이 있었다. 연극영화과 전공을 하면서 웬만한 잡일은 다 도맡아 했기에,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경험이 있었다. 모든 경험이 공공분야로 수렴하고 있는 나의 이력서를 '인사 직무'에 열정이 있는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 자소서에 이 말 저 말을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대략 이런 말이었다.

 

"저는 항상 사람과 사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전형적인 자소서의 문항들을 연습하고, 여러 에피소드들을 쥐어짜 내어 글을 완성했다.


그렇게. 우연히.

스타트업 채용담당자로 입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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