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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 Sep 23. 2024

6.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손바닥 뒤집듯 변한 날

현실을 깨달은 날

아이가 간절했다. 시험관 여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병원비가 빠져나가도,

불규칙한 시험관 일정 때문에 하루 앞도 계획을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2~3번 왕복 3시간에 걸쳐 병원에 도착해

1~2시간 대기한 뒤 기껏해야 1~2분 진료를 받고 나와도,

배에는 주사 자국 가득,

팔에는 피검사하느라 생긴 주사로 인한

멍 자국이 가득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어려운 여정을 끌고 가기에는 미래가 너무 불투명했고

현실적으로 아이를 갖기엔 너무 어려운 몸이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불안했다.

지난 3~4년 내 삶의 모든 관심은 시험관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내 모든 삶이 시험관을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말이다.


무슨 일정을 잡아도 시험관 일정에 맞추고,

음식을 먹어도 시험관 시술에 도움이 되는지,

가계 예산을 짜도 시험관을 중심으로 잡게 되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만약에 어쩔 수 없이 시험관을 못하게 된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나는 무엇에 집중하며 살 수 있을까?

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할 정도로 불안하고 두려웠다.


이 정도로 내 모든 관심과 에너지, 그리고 삶은 시험관의, 시험관을 위한, 시험관에 의한 삶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로

변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믿기 어렵지만 정말 그랬다.


사실 아이가 없는 삶을 생각했을 때,

가장 힘든 부분이

아이가 없다는 그 자체보다

아이를 가질 수 없고, 내 삶에 아이가 없으며, 아이가 없는 가정을 꾸려나가야 된다는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혼하고부터 5년의 시간 동안 아이 가지는 목표 아닌 목표 하나만을 보고 달려왔는데,

내 삶은 오로지 임신만을 위해 돌아갔는데,

그게 실현되지 않았을 때의 현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못 갖는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 생긴 회피 기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크리스천이니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평안하게 변한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아마 당시 내 현실과 주변의 적나라한 현실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출산과 육아란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젊은 부부가 사이좋게 유모차를 끌고 멋진 카페에서 브런치를 한다거나,

한가하게 공원을 산책한다거나,

남편은 비현실적으로 와이프만 사랑하고 위하며 육아에도 엄청 적극적이고 소질이 있는 그런 모습?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특히 신생아 때는 잠을 못 자 피곤에 찌든 모습에,

감성 카페에 브런치 먹으러 갈 때나 입는 멋진 옷이 아닌 목이 다 늘어진 티셔츠에,

남편과는 내가 더 육아 많이 했니,

네가 더 잤니, 네가 기저귀 갈 차례이니 하면서 갈등하는 모습 아닌가?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내 남편은 이상적인 육아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시험관 하는 아내를 두고도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는 골초에다,

흡연하고 와서도 손만 씻으면 아이를 안을 수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아이를 맡기겠는가?

완전히 요즘 말하는 독박육아 당첨이다.


안 그래도 일이 많아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남편인데,

시간적으로나 위생적으로나 남편에게 맡길 수 없다.


그리고 당시 내 주변에선 육아에 찌든 모습의 이들이 많았다.

딸, 아들 낳아 남부럽지 않게 사는 이들인데도 한 번씩 얼굴을 보면 얼굴이 그렇게 어두울 수 없다.

아무리 남편이 잘해준다 하더라도, 아무리 아이들이 까탈스럽지 않고 수월할지라도,

육아라는 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가?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내 성격으로 봐서는 생각대로 안 풀리면 아이한테도 신경질, 화풀이하고

또 남편도 내 맘대로 안 되니 스트레스는 더욱 받을 것이고,

그러면 그 영향은 또 고스란히 아이한테 가서 악순환의 반복이라

앞에서 나온 그런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아, 차라리, 나에게는 아이가 없는 삶이 낫겠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이게 그리 큰 고민의 시간 없이 정말 한 1~2일 만에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정말 아이를 못 가지면 세상 끝날 것처럼 불안해하고 걱정했던 사람인데,

이러한 적나라한 현실을 생각하니 아이 생각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실제로 현재 우리 부부는 아이를 못 가진다는 피해의식을 감추려 정신승리하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없어서 너무 좋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으며, 어디 가고 싶으면 가면서

부부 둘만이서 자유롭게 살고,

경제적으로도 아이 교육 등으로 인한 걱정 없이 조금은 여유를 가지며 산다.

아마 아이가 없는 피해의식을 감추려 더 장점을 부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삶이 좋다.


아이를 가져본 적도, 낳아서 함께 산 적도 없어서 아이 있는 삶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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