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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Aug 14. 2019

그림자를 판 사나이, 샤미소(1813)

거래의 중요성에 대한 그림자를 판 사나이


김영하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는데, 느닷없이 나오는 이 책. 작가님은 어렸을 때 이 책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후에 동명의 소설도 냈단다. 근데... 난 이 책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ㄷ... ㅔ.. 다소 부끄러운 수줍은 마음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환상적인 소설이다. 슐레밀과 회색 옷을 입은 악마의 만남은 만날 때부터 환상적이더니, 그림자와 영혼 그리고 마르지 않는 돈 주머니, 자루 같은 거래 대상마저도 환상적이다. 그런데 그림자를 팔았다는 사실보다 팔 때 딜deal조차 하지 않는 주인공이, 한 걸음에도 7척을 움직인다는 요술장화를 활용할 줄 모르는 주인공이 어리석어 보이고, 그림자가 없다고 호들갑떠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난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는 이미 찌들어 버린건가. 나는 회색 옷을 입은 악마에게 어떤 것을 내어 줄 수 있고, 그리고 어떤 것을 얻고 싶다고 말할까. 아무리 생각해보다 ‘그림자’만큼 그럴 듯하고, 의미심장하며, 심지어 멋지기까지 한 것은 도무지 생각나질 않았다. 그래,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거라면 이 책이 고전이 아니겠지.




그림자 말고 내어줄 수 있는 것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는 이에게 날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마도 그는 더욱 끔직스럽게 자포자기할 것이리라. 보물을 지키는 파프너처럼 나는 그 어떤 인간적 위로 없이, 금화에 묻혀서도 초라하게 지냈다. 금화 때문에 모든 삶에서 단절되고 말았다는 생각에 나는 금화를 좋아하기는 커녕 오히려 저주했다 (p.43)


그래도 이런 회색 옷을 입은 악마가 내게 '누구보다 크게 웃고, 쉽게 행복해하는만큼 자주 우울해하고 급격하게 화를 내는 내 감정'을 내어 달라고 하면 왠지 언감생심 싫다고는 하겠지만 내어줄 수 있을 듯하다. 노 쿨 암쏘리 쿨하지 못해 미안해를 흥얼거리는 나에게 세상 핫함을 거두어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싶어 속으로는 아마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나는 포커페이스가 안 된다. 원래부터 안 됐다. 좋으면 좋은게, 싫으면 싫은게 그냥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환장하게도 정말 이 감정을 들켜야 하는 순간에는 기가막히게 잘 숨겨버린다. 그야 말로 TPO파괴. 감정을 자의적으로 팔아버리고 싶은 여러 이유는 모두 나 때문이다. 사람에게 갖게 되는 조바심과 기대에서 오는 실망이 싫어서 감정에 무뎌지고 싶다. 기대하지 않음에서 오는 기분 좋은 놀람과 고마움을 즐길 때도 됐는데, 그마저도 또 실망할까봐 딱 멈춰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 때문에, 자꾸만 받은 만큼만 주자는 생각을 하는 나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편이 낫겠다싶다. 게다가 회사를 다닐수록 이런 포커페이스가 너무나 절실하다. 가끔 포커페이스가 제대로 된 선후배를 만나면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 생각을 읽을 수 없고 그래서 조금은 막 대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는데 그런 약간의 거리감이 갖고 싶은 거다. 좋은게 좋은 거라고 편하게 해주니까 ‘선배님 너무 좋아요’라며 가끔씩 선의 끄트머리까지 와서 기어오르는 후배들을 보자면 이게 나를 우습게 보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지친다. - 그렇다, 나는 꼰대 꿈나무다- 감정이 사라지면 우리가 남이냐며 다가오는 회사사람들에게 '예, 우리 남입니다'라고 짜증이 나지만 이 악물고 웃으면서 말 할 일도, 그렇게 말하는 내가 웃프게 대견할 일도 없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로만 대화하는 깔끔한 관계를 유지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럼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어질테고 왠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받아야 하는 것


도대체 당신의 영혼이란 어떤 물건입니까? 그것을 본적이나 있습니까? 언젠가 죽을 떄 그 영혼을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할 작정이십니까? 오히려 저 같은 수집가를 만난 것에 대해 기뻐하십시오 (p.79)


감정을 내어 주고 무언가를 받아야 한다면 나는 그래도 마르지 않는 돈주머니를 택할란다.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를 만들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돈이 최고냐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나는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띄우는 셈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아득바득 하나를 해치우고 또 두번째를 바라보며 부득부득 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가 볼 곳도, 즐길 곳도 많은데 눈 앞에서 희롱하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 남들에게는 잘만 잡혀주던데- 돈 모으기에 내 인생을 파 묻기가 싫다. 그렇다고 안 벌 수도 없으니, 이런 딜deal이 온다면 나는 돈주머니를 택하겠다는 거다.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기꺼이 무엇을 하고 싶은 순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누군가와의 셈에서 내가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그려려니 할 수 있는, 두 개를 가졌을 때 하나는 놓아줄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갖고 싶다.




기회는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살면서 그림자와 돈,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하는 극단적으로 치명적인 상황은 오지 않을 테지만, 만의 하나의 비율로 나에게 오게 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미리미리 해 둬야겠다. 악마와의 만남도 어쩌면 하나의 기회일테니 말이다.


언제 밝은 시간이 내게 다시 미소를 던질 때면, 그리고 모든 것이 용서 되어 내가 다시 행복해지면 나는 자네를 진심으로 생각할 걸세.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내가 실컷 울 수 있을 정도로 자네의 진실한 가슴은 큰 의지가 되었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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