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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Sep 25. 2021

신림(神林)이라 불리는 울창한 숲길을 품은 서오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나무와 숲이 풍성한 서오릉 / 이하 ⓒ김종성

서오릉(西五陵)은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능이 자리한 동네 이름도 용두동(龍頭洞)으로 왕릉과 잘 어울린다.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의 다섯 능을 말하며, 그밖에 다른 원과 묘도 함께 있다. 원(園)과 묘(墓)는 왕의 친부모나 세자(빈), 폐위된 왕과 왕후의 무덤을 이른다. 서오릉에도 대빈묘가 있는데 희빈 장씨(장옥정)의 무덤이다.숙종의 맏아들(경종)을 낳았으나 계비 인현왕후를 무고·저주하다 사약을 받고 폐위된 그녀의 무덤은 능이나 원이 아닌 묘가 된다.      


서오릉 입구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왕릉은 명릉(明陵)이다. 조선 19대 숙종(1661~1721)으로 무려 46년간이나 집권한 왕과 부인이 잠들어 있다. 대동법(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의 전국실시, 상평통보를 유통시켜 상업을 장려하고, 북한산성, 한양도성 외에 강화도 해변에 군사용 진지를 신개축하였고, 청나라와의 국경을 확정하여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는 등 나라를 발전시켰다 하여 왕릉 이름에 명(밝을 明)자를 붙였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의 정신이 깃든 조선왕릉

재위기간 46년 조선의 태양왕이라 불리는 숙종 임금이지만 서오릉의 능들은 사치나 위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에 '작신궁실(作新宮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기록이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조선왕릉에도 그 정신이 이어 내려오지 싶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미학은 오늘날에도 계승 발전시켜 우리 일상 속에서 간직해야할 소중한 한국인의 미(美)라고 말한다.


서오릉은 세조의 맏아들이자 왕세자였던 의경세자가 스무 살에 요절하자 풍수지리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곳에 세조가 친히 거동해 능지로 정하면서 비롯되었다. 익릉에 잠들어있는 숙종의 첫째 왕비 인경왕후 또한 20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원인은 천연두였다. 천연두 혹은 두창은 전염성과 사망률이 높아 당시 호랑이에게 물려간다 라는 뜻이 들어있는 ‘호환(虎患) 마마’ 라고 불리는 공포의 전염병이었다. 근대에 들어서야 지석영에 의해 겨우 백신이 나오게 되었다.

시민에게 개방한 재실
재실 마당 조선왕릉 사진전

명릉 앞에는 여러 채의 한옥집 같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데 서오릉 유일의 재실(齋室)이다. 재실 앞에는 서오릉에서 가장 장대하고 높다란 노거수 은행나무가 이정표처럼 서있다. 재실 주변의 늙은 소나무들이 재실과 명릉을 향해 절을 하듯 허리를 수그리고 있어 신기했다. 흡사 왕을 보필하는 충성스러운 신하들 같다.  


명릉 재실은 본래 비공개 구역이었다가 10월 17일까지 한시적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재실 마당에 서오릉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활엽수와 침엽수 나무가 울창하게 어울려 살다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풍경이 좋다.


재실(齋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이 상주하며 살던 곳이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도 능참봉 출신인데, 능참봉은 조선시대 최하위직 관료인 종9품으로 오늘날 9급 공무원에 해당한다. 예조에 속했으나 임금의 능을 모시는 일선의 실무자로서 실제 직책보다 높은 권한을 행사했다.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제물을 준비하는 전사청과 그 외 부속공간인 행랑채, 부엌, 마구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 뒷마당 굴뚝
소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진 서오릉 숲길

재실 뒷마당에 가면 몇 개의 낮은 굴뚝이 눈길을 끈다. 흔히 굴뚝은 연기를 효율적으로 날리기 위해 집 지붕보다 높고 길게 만드는데 우리나라 일부 한옥집의 굴뚝은 이곳처럼 낮고 작게 만들었다. 이는 굴뚝의 존재와 연기를 최대한 감추기 위한 것이다. 배불리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이 양반 한옥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고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고 한다. 


앵봉산(235m) 자락에 있는 서오릉은 '신림(神林)'이라 불릴 만큼 자연경관과 숲이 잘 보존돼 있다. 울창한 왕릉 숲길은 걷는 내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홍릉 익릉 창릉을 지나는 산속길에 소나무숲과 서어나무숲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부드러운 흙길 산책로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흙길을 여유롭게 걸어본 게 얼마만 인지. 걸음걸음이 한결 경쾌하고 기분 좋다. 흙 밟기는 ‘어싱’(Earthing, 땅에 발 딛기)이라 하여 신경이 안정되는 치유법으로 쓰이고 있다. 

울울창창한 서오릉 소나무
왕릉 정자각 추녀마루 위 쩍벌남 토우 잡상

왕릉에 사는 소나무들은 산에 사는 소나무들보다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다양한 숲을 좋아해서 이렇게 한 종류의 나무가 모여 살면 전염병으로 생태계를 조절하다. 산에 군락을 이루어 사는 소나무들이 걸려 죽게 되는 '소나무 재선충' 병이 그 예다. 왕릉의 소나무는 관리소에서 사람들이 보살펴주는 귀족나무라 할 수 있다.


향로와 어로로 나뉘어 있는 왕릉 앞 돌길이 보이는 정자각 아래 돌계단에 앉아 쉬었다. 정자각 건물 추녀마루 위에 줄지어 있는 잡상들이 흡사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 맨 앞에 앉아있는 장수처럼 보이는 잡상은 조선판 ‘쩍벌남’이지 싶어 웃음이 난다. 경건하고 엄숙한 왕릉이지만 해학과 익살을 잊지 않았던 조상들의 성정을 느끼게 된다. 조선 시대에는 기와 제조 관서인 와서(瓦署)에 특별히 잡상장(雜象匠)을 두어 훌륭한 잡상 제작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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