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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괜찮을 텐데, 한 열흘 지나면 아주 죽을 맛이다. 그래도 그쯤 되면 이제 금방 끝날 거야.”
자가격리자 통보를 받은 날, 자가격리 유경험자인 아빠가 전화 상으로 했던 말이다. 느긋한 말투로 펼쳐지는 경험자의 조언을 그때는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엄마에게 대답했을 때처럼, 나는 괜찮다고 잘 놀고 잘 지낼 거라고 걱정 말라고 큰소리 땅땅 쳤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아빠 말은 정확했다. 이래서 세상이 경력직 뽑는 거라더니… 열흘쯤 지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이쯤 되니 바라는 것도 단순해졌다. 그냥 나가서 걷고 싶었다. 아니 꼭 걷지 않아도 되었다.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기만 하면,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청개구리 심보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그랬다. 끝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니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럴 때면 조용히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마치 고3 때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수능 끝나면 할 일”을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잔뜩 적었던 것처럼. 바깥에 나갈 수 있게 되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면 어디를 가볼까…
머릿속의 나는 버스를 탄다. 햇빛이 좋은 낮 시간에. 회사는 반차 냈다. 아님 아예 휴가 내고 아침 느지막한 시간까지 낮잠을 자고 슬슬 나와도 좋겠지. 광화문으로 간다. 바람이 산들산들하고 하늘이 아름다운 계절에 여유롭게 걷는다. 사람이 많지 않은 카페로 들어간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시키고,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시킨다. 손에 착 붙는 펜을 꺼내서 일기를 써야지. 자가격리가 끝나고, 스트레스받던 일도 모두 지나가서, “마음이 편하다”라고 첫 문장을 쓰는 상상을 한다.
천천히 일기를 쓰다가 슬슬 지쳐오면 일기장을 덮고,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야지. 보통 이럴 땐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편이지만, 이때만큼은 시집을 읽어야 할 것 같아. 어떤 시집을 들고 가볼까. 쉽살재빙 빙고에 넣었던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로 해야겠다. 저 빙고는 어차피 자가격리 기간 내에 다 채울 수 없을 예정이니까…
시 몇 편을 음미하며 씹어 삼키다가, 시간을 확인한다. 예매해둔 영화를 볼 때다. 시사회에 가려다 못 본 영화를 봐도 좋겠다. 하지만 내가 즐겨 가는 영화관은 아주 작으니까, 상영 시간표가 허락해주는 영화를 보게 될 거다. 때론 그렇게 아무 배경지식 없이, 영화관에서 선정한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앉아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아마 늘 앉는 자리를 예매했을 것이다. 낮 시간이라 사람도 많지 않을 테니. 아주 어쩌면 상영관에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황송한 마음 반, 코로나 시국의 작은 영화관을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좀 더 자세를 편하게 하겠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상영관 불이 켜지면, 잠시 딴 세상에 다녀온 사람처럼 코를 훌쩍거리면서 일어날 것이다. 영화관을 나서면, 영화가 내게 선사해준 감정이 너무 좋아서 핸드폰 메모에 문장 두어 개를 끄적거려 놓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러 정류장까지 걸어간다.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다른 시뮬레이션도 돌려본다. 여기에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마음속에 먼지처럼 일어났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내가 있다. 나를 지켜줄 일상 습관들을 하나씩 채워가는 것이다. 과도하게 외주화 되어 있는 식생활의 주도권을 가질 방법을 고민하고,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덜 뿜어낼 방법을 찾아보고. 이런 고민이 너무 피로하면 오래갈 수 없으니, 일상 루틴으로 자리 잡게 하고 싶다.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겼지난 그게 호사였음을 깨닫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할머니와 나눈 짧은 영상통화는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 얼굴이 되었다. 앞으로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시간을 더 새삼스럽게, 더 귀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늘 있는 하루 중 하나가 아닌, 특별한 하루로 기억하고 싶다. 시간 지나면 이 마음도 또 잊겠지만.
이제 곧 단계적 일상 회복, 그리고 코로나19와 평행선을 그리며 일상을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의 시대가 된다고 한다. 물론 아직 마스크를 벗을 수 없고,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살피는 일도, 자가격리를 하는 일도 점차 사라져 옛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변화는 또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변화의 파도타기가 불가피한 세상에서 우리는 일상을, 서로를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 답은 때마다 더듬더듬 새로 찾아야 하겠지만, 매번 모양을 달리하겠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마음을 한 번씩 돌이켜보겠다고 기록해 두면서, 격리 해제의 시간을 맞는다.
십여 일만에 신발을 신고 이족 보행 문명의 기쁨을 만끽해 본다. 걸으면서도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아직은 살짝 든다. 며칠 이내로 사라질 감정이다.
불과 2주 사이에 날씨가 많이 선선해져 있다. 새로운 계절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자가격리가, 마침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