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축하 드릴 일이 있다면 참고하세요
돌이켜 보면 여행을 준비할 때 각자의 취향보다도 더 신경 쓴 것은 “이 선택이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였다. 세 명 중 두 사람이 첫 유럽 방문이었기에 취향을 세밀하게 알기 어려웠고, 유럽 정도 장거리 비행을 여럿이 시간 맞춰서 또 할 수 있을지 여부도 알 수 없으니 어느 정도는 ‘여기까지 왔으면 이건 보고 가야지’ 싶은 것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들어갈 법한 장소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릴 만한 장소들을, 아주 조금은 신경 썼다.
그리고 이 신경 쓰는 마음은, 조금 경쟁적이고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그런 마음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가족은 취향이 그다지 SNS 친화적이지 않다. 랜드마크는 절대 가지 않고 (사람 많아서 싫어한다), 딱히 볼 거 없고 사람도 없는 한적한 동선으로 적절히 다니는 걸 좋아하고, 그다지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은 음식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아직도 민박집 같은 게 남아있는 한적한,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닷가를 슥 돌아보고, 쇠락해 가는 산나물 직판장 같은 데서 2000년대의 흔적을 묘하게 느끼고, 내려오는 길에 곰칫국을 먹는 일정. 예쁜 데를 골라 다니며 기록하고 공유하는 아기자기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그냥 슴슴하게 순간에 젖어 들었다가 끝내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환갑/칠순/은퇴/etc…라면? 꼭 확인하자. 부모님이 섭섭하실 수도 있으니까.
취향이 그런 부모님이 아니어도 섭섭하실 수 있다. 부모님 또한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등으로 다 보셨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 분들이 어떤 환갑 축하를, 칠순 축하를, 은퇴 기념식을 하셨는지. 단순히 커다란 꽃다발 하나 받은 게 아니라 플래카드며 풍선이며 각종 현란한 아이템들이 등장했다는 걸 부모님도 다 알고 계신다. 그럼 사람 심리가 당연히… 기대가 생기지 않을까?
이건 사실 부모님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매일 같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SNS의 발달로 우리는 세상 곳곳의 사람들의 일상을 제법 많이 보게 되었다. 사실 진짜 내밀한 일상은 아니고 좀 연출과 편집을 거친 일상이지만… 좋았던 순간을 기록하고 돌아보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기쁜 일 중 하나지만, 문제는 연출과 편집을 거쳤다는 과정을 스스로도 간과하게 된다는 지점에 있다. 전시되어 있는 타인의 일상은 매끄럽게만 보이고, SNS에 올리지 않은 나의 일상 속 우당탕쿵탕 난리들은 괜스레 더 초라해 보인다. 사실 생은 다 그런 것인데.
아무튼 그래서, 아빠의 환갑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우리 엄마는 살짝 우리에게 귀띔을 했다. 요즘 보니까 플래카드도 있고 그렇더라. 인터넷 가면 다 팔아. 남들은 환갑 기념 여행도 가고 그러지만, 집 떠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빠를 생각해,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예쁜 축하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환갑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아빠가 조금 울적해했다는 엄마의 증언이 뒤따랐다. 환갑을 앞두고 아빠는 동네 경로당에 준회원 신청서를 내고 왔다. 한때 청년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 아직 그때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은데, 경로당이라니. 우리도 기분이 좀 신기하긴 했다. 우리 동네 경로당은 환갑 때 준회원 신청서를 내고, 65세가 되어야 정회원으로 입회가 가능한 곳이라는, 놀랍도록 체계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실 나도 가끔, 어린 시절 상상했던 3n살의 페르소나에 비해 내가 너무 어른스럽지 않아 기분이 이상할 때가 있는데, 아빠도 자기 나이가 가끔 그렇게 새삼스럽지 않을까. 그 무렵에 부쩍 우리도 집에 가서 그런 소리들을 자주 했다. 아빠, 요즘 사람들은 하도 젊게 살아서 나이에 0.7을 곱해야 옛날 나이에 맞대. 아빠, 유엔에서 새로운 연령 분류 기준을 내놨는데 65세까지가 청년이래. 아빠 아직 청년이야. (유엔이 그런 걸 왜 하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유엔에서 그런 발표를 내놓은 적은 없는 온라인 루머라고 한다. 그래도 백세시대에 나쁘지 않은 흐름이라고 본다. 그리고 뭐 우리에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아빠의 기쁨이 되기 위해 환갑 준비반을 가동했다. 일단 엄마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돈 봉투가 매달린 풍선과 플래카드를 주문했다. 엄마가 “인터넷 보면 상차림을 싹 해서 팔아” 라고 했는데, 진짜 테이블보와 테이블에 올려둘 이것저것을 다 적당히 조합해서 팔긴 했다. 다만 그 상차림을 보신 작은아빠의 첫 마디는 “아니 무슨 돌 상을 차려놨어!”였다는 것도 피드백으로 남겨 둔다.
케이크는 주문 제작을 했다. 요즘은 하도 예쁘게 나오는 케이크가 많아서 사실 뭐라도 다 좋지만. 돌 상처럼 생긴 상차림과 톤앤매너를 맞추어 곱고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앙금 떡 케이크를 주문하고 싶었는데 문제가 있었다. 서울에서 픽업해 집으로 이동하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하룻밤을 넘겨야 하는데, 앙금 떡 케이크는 꼭 당일 먹어야 한다는 거다. 결국 아빠가 몇 년 전 맛있게 드셨던 당근 케이크로 노선을 바꾸고, 주문제작 케이크 구경을 좋아하는 취미를 십분 살려, 유독 예쁘면서도 케이크 평이 좋은 곳으로 골라 주문했다. 아빠가 너무 맛있게 드시고 하나 또 살 수 없냐고 물어보셔서, 나중에 디자인 케이크 아닌 일반 케이크로 한 번 더 주문해 다시 먹었다.
‘잔치’ 느낌으로 많은 사람을 초대하지는 않겠지만 아빠 친구 분들은 좀 다녀가실 것이다. 나나 동생뿐 아니라 우리 아빠도 친구 분들께 생일 선물을 받는다. 어른스럽게, 많은 경우 돈 봉투를 건네시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동네 어른들이 마치 경조사 축의금처럼 건네 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아, 지역사회의 따끈따끈 끈덕한 관계망이란. 그렇다면 잔치의 핵심, 답례품을 준비해 보자. 너무 비싸지 않은 호두정과 정도를 염두에 두고 검색하다가… 보고 만 것이다. 곱디 고운 보자기 포장을. 그걸 보고 나니 일반 플라스틱 통이나 종이 상자에 담긴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 값이 배로 비쌌지만 어차피 개수가 그렇게 많지 않으니, 기왕 답례품으로 드리는 거라면 받을 때 기분 좋은 것으로 하자며 보자기에 곱게 싸인 호두 정과를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우리 집에는 오래 전 친척들이 가져다 놓은 아빠의 어린 시절 사진, 학교 졸업앨범 같은 것도 고스란히 남아 있고, 엄마의 정성 덕분에 엄마아빠의 연애 시절 사진이 꽂힌 앨범이나 우리 어린 시절 사진으로 꽉 찬 앨범이 잔뜩 남아 있다. 그 앨범을 다 뒤져 사진을 스캔하고 음악을 깔아서, 크게 잔기술 부리지 않고 그저 선형적인 시간 하나에 기대어 영상을 만들었다.
https://youtu.be/HyaSsQDdPLA?si=EU7vUl71prn7l_tQ
사진을 고르면서, 또 동생이 영상 만드는 걸 옆에서 보면서, 중간중간 주책 맞게도 눈물이 났는데. 그건 3차원의 존재인 인간이 드물게 4차원을 인지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선형으로 느껴지는 시간이 사실 직선형 이상의 풍성한 무엇이라고 느끼는 순간. 언젠가 미래에 나는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을, 미래의 내가 와서 말해준 것처럼 뚜렷하고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감각을 아빠의 현재와 과거 사이에 주게 될 것도.
영상은 단순하게 시간 순으로 사진을 배열하는 정도였지만, 그렇기에 어쩐지 동시대인의 보편적인 인생 서사처럼 보였고… 그래서 영상을 본 아빠와 엄마, 같이 보신 친척 분들 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보면서 조금씩 눈가가 촉촉해지는 영상이 되었다. 인생 전체의 사진을 담는 건 여러 이유로 어렵더라도, 어린 시절 가족 사진만이라도 모아서 잔잔한 음악 깔아 상영회 여는 거, 꽤 괜찮은 추억 여행 방법이 될 것 같다.
우리 집은 은근히 영상을 자주 활용했는데, 어느 해였던가 부모님 결혼기념일에는, 낡은 비디오 테이프를 사진관에 맡겨 DVD로 만들고 이것도 같이 보았다. 젊고 긴장한 엄마의 얼굴, 환하게 웃고 있는 (아직 외모가 청순했던 시절의) 아빠 얼굴, 내가 기억하는 모습 이상으로 훨씬 젊은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 아는 사람들의 젊었던 시절 얼굴과, 나는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가 반가워하는 어떤 얼굴들. 그것도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봉투를 가져가면 “넉넉하게 넣었느냐~” 하며 퍼포먼스를 시작하는 식으로 고맙다는 표현을 대신하는 아빠지만, 드물게 그 날만큼은 “정말 고맙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 혹시 집에 비디오 테이프가 있다면, 더 낡고 곰팡이 슬기 전에 근처 사진관에 들고 가기를 권한다.
https://youtu.be/im4LeSHkT2s?si=nJeFoSZnuovOPfp_
여행을 마치고 기록까지 남기고 나니,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여행이라기보다 엄마와 아빠가 오래오래 꺼내 보며 즐거워할 기억을 남기는 일이었다는 게 보인다. 멀리 여행 가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집안 서랍장과 앨범을 뒤져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블루투스 스피커에 엄마아빠가 젊은 날 좋아하던 노래들을 재생하고 같이 커피 한 잔을 혹은 맥주 한 잔을 나누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아빠가 좋아했던 가수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의 명곡을 처음 알았고,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 나이프(Knife)를 처음 들었다. 어떤 여름 밤의 추억이 그때 좀더 덧대졌고, 아마 몇 년 후에도 우리는 그 노래들을 꺼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평온한 삶이란 어쩌면 계속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또 그 추억을 같이 꺼내 보는 것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없는 날들이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기에, 할 수 있을 때 더욱 힘을 내어 기쁜 추억을 만들고 또 매만져 가고 싶다.
끝으로, 아빠 환갑 전날 코로나 판정을 받아 케이크 픽업도 사촌동생에게 부탁하고 방에 격리된 채 작은아빠와 고모와 아빠 친구들 목소리만 들었던 때, 영상 송출이 가능하도록 해준, 이 모든 상영회의 주역, 구글 크롬캐스트에게 영광을 돌린다.
[오늘의 요약]
1. 부모님 친구 분들 SNS에 자주 올라오는 축하 아이템 양상을 파악한다. 거기에 뒤지지 않기로 한다.
2. 더 이상 "잔치"를 하지 않는 (환갑이나 은퇴 같은)일이어도, 부모님 대에서는 선물이나 봉투를 주고받으시기도 한다. 답례품을 준비한다면 부모님 면도 서고 친구 분들도 좋아하신다.
3. 부모님 사진을 모아 영상을 만들어 보아도 좋다. 평생 사진이 없다면 어린 시절 가족 사진 같은 걸 모아도 좋다. 중요한 건 같이 추억 여행을 한다는 것.
4. 결혼기념일 비디오나 홈비디오 테이프가 있다면, DVD로 변환하여 상영회를 열자.
5. 구글 크롬캐스트 짱.